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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h Dec 29. 2022

제주에 산 다는 것.

나에게 있어서 제주란?

나는 시골에서 태어 나고 자랐다. 한마디로 촌년이다. 중고등학교는 그래도 시에서 공부했다. 시로 가니 반 친구 아빠는 치과 의사란다. '어떻게 아빠가 의사일 수 있지?' 우리 아빠는 물론, 지금껏 나의 친구들의 아빠는 모두 농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아빠가 의사라는 것은 나에게 충격이였다. 그리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운 좋게 대학은 특별시로 갔다. 대학에 가니 교수 딸들이 지천이었다. 허허.

시골에서 자란 나는 10대가 되고, 20대가 되면서 도시가 주는 세련미, 청결함, 복잡함 마저도 사랑하게 되었다. 상경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누가 나에게 길을 물었다. 내가 아는 길이었다. 설명해 주었다. 그런 후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치 내가 서울 사람인 양 느껴졌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도 난 여전히 서울이 좋았다.






40이 넘어 인연(제주도에 사는)을 만났을 때, 직장 동료들은 말했다. "제주도,... 너무 멀지 않아? 잘 생각해!"라고 말이다. 인연이 결혼으로 이어진다면 직장뿐만 아니라 내 삶의 터전을 모두 옮겨야 할 터이다. 결국 나는 그 인연과 결혼을 했고, 24년간의 서울생활을 결혼과 함께 종지부 찍었다.


40대에 시작된 제주생활

내가 처음 제주땅을 밟은 것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다. 사실 그때 제주에 머무는 내내 비가 왔었고, 목포로 가는 배 위에서 대학생 오빠들이 기타 치는 모습에 반 한 기억 밖에 없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제주와의 인연은 1960년대부터다. 내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는 딸 둘을 낳고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는 동안 20대의 젊은 아버지는 이제 막 경찰이 되어 첫 발령지로 제주도 땅을 밟았다. 2년 동안의 제주도 근무는 아직도 팔순이 넘은 아버지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한림지서, 귀덕초소, 금악 이시돌, 하귀 등 제주도 지명을 기억하셨고 4년 전 우리 집에 오셨을 때는 당신이 근무하시던 귀덕초소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기억도 희미하거니와 60년이란 세월 속에 귀덕은 더 이상 그때의 귀덕이 아니었다. 아직도 우리 동네를 걷다 보면 60여 년 전 아버지가 생활하셨던 우리 동네는 어땠을까 떠올려 보곤 한다. 그러나 잎이 무성한 동네 퐁낭만이 말없이 그때를 기억하겠지! 아버지는 희미한 기억으로, 나는 상상으로만 느껴볼 뿐.

1967년. 제주도 근무시절 부모님과 큰언니 그리고 작은언니


그렇게 도시, 아니 서울을 사랑하던 내가 다시 시골 촌년이 되었다. 나는 농사가 힘든 일임을 알기에 '농사는 절대 안 짓는다'가 내 신조였다. 다시 시골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나는 '농사 안 짓는 시골사람'이 되겠다고 남편에게 선언했다. 하지만 제주생활 9년 차. 지금 우리 집 텃밭엔 마늘, 양파, 상추, 대파, 쪽파가 심어져 있다. 가꿀 텃밭이 있으니, 농사를 안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농사를 업으로 하진 않지만 텃밭 가꾸고 마당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심한 농사다. 휴~ 제주에 산다는 건 나를 다시 농사를 짓게 한 것이다.


육아와 함께 시작된 제주생활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육아 생활을 해 보지 않았으니 비교대상은 없어 뭐라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사방이 네모난 빌딩 숲 속에서 자란 아이들 보다 자연의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란 아이들이 훨씬 감정이 풍부하다고. 결론은, '정말 그런지 잘 모르겠다'이다. ㅎㅎ

제주도에서 지인이라고는 전무한 나에게, 운 좋게 우리 동네에 '수눌음육아나눔터'가 개소되어 아이 또래의 엄마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육아는 절대 혼자 해서는 안된다. 나의 경험이다.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 우리는 육아 공동체를 결성하고 아이들과 함께 오름으로, 곶자왈로, 바다로, 용천수로,... 함께 다니며 아이들에게 제주의 사계절과 함께 유년시절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사는 곳이 모두 2km 안에 있으니 공동체 활동뿐만 아니라 텃밭에 난 채소가 있으면 나누고,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 들어오면 돌리는 행위가 공동체라는 의식을 심어 주면서 행복이 되어 돌아왔다.

곶자왈 걷고 나서 우리 공동체의 한 엄마가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모습(제주 금산공원에서)

 





한라산은 만만해 보인다. 제주 어디를 가든 그 정상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벽부터 다리품을 팔아 백록담을 품에 안으면 한라산의 찬란함과 신비로움에 푹 빠진다. 화창한 날 바다는 에머럴드 빛이다. 정말 환상이다. 몇 백 년 이어져 내려온 밭담의 자연스러움은 놓쳐서는 안 될 제주의 아름다움이다. 누군가 제주는 어때라고 묻는다면, 제주는 풍성하지는 않지만 있을 것 다 있는 곳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이 있고, 사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으며 농촌과 어촌 그리고 도시가 어우러져 있다. 한 시간 내로 바다, 시골, 도시를 오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제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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