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백구 씨
마중하면 봄 마중, 가을 마중, 설 마중 등이 있지만 백구의 마중만은 못 하다. 백구는 고향 집에서 같이 살던 큰 개다.
백구를 키웠다기보다는 백구랑 동거했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백구는 꽤 흔한 이름이다. 털이 희다는 이유로 붙여진 이름이라 동네에 같은 이름이 여럿 있었다. 고향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백구도 가족처럼 등장한다. 재래식 부엌에서 볏짚을 베개 삼아 잠을 잤고 어머니랑 밥 익는 냄새를 같이 맡았다. 겨울철 출산도 부엌에서 이뤄졌다. 백구가 예민해져 있어 모두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힐끔힐끔 봤다. 핥아 키우는 모성애가 보기 좋았다. 백구가 아궁이 옆에서 졸고 있는 모습은 평화로웠다. 새끼들도 따뜻한 부뚜막에 올라가 웅크리고 잠을 자기도 했다. 아궁이 속 뜨거운 재를 이용해 김도 굽고 조기도 구웠었다. 냄새 맡고 군침 흘리는 백구를 보면 어머니는 미리 조기 대가리 하나 정도 떼어 던져 주기도 했다. 가끔은 훔쳐 먹다 호되게 야단맞은 적도 있었다. 평상이나 마루에서 식사하는 여름이면 항상 근처를 배회했다. 백구 줄 음식이라도 생기면 누구라도 “워리, 워리.” 불렀다. 이름이 두 개였다. 백구는 밥을 같이 먹는 식구였다. 그럼에도 마당에 있는 닭을 쫓아다니며 물어뜯으려 한다든지 낯선 손님에게 험하게 짖어대기라도 할 때는 혼나기도 했다. 하기야 자식도 혼날 때가 있으니 그 정도는 애정이다.
백구는 영리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200여 미터 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걷다 보면 꼬리치며 달려오는 백구를 만나는 날이 많았다. 내 주위를 빙빙 돌기도 했다. 귀를 힘 있게 뒤로 젖히고 웃는 얼굴로 혀를 내밀어 핥기도 했다. 반가워 머리 쓰다듬으면 아예 작정하고 엎드리기도 했다.
“더 해 주세요.”의 표현이다. 때로 그것이 귀찮기도 했다. 특히, 아버지의 자전거 소리를 잘 알아챘다. 아버지는 마중 나오는 백구가 자식보다 더 예뻤을지도 모른다.
“허허 이 녀석 대단하다. 어떻게 알고 나오는 거야?”
머리를 쓸어주셨다. 어찌 사랑스럽지 않으랴. 식구들의 마중은 백구가 도맡아서 했다. 시집간 언니가 친정 올 때도 그랬고 군대에서 휴가 나온 오빠들이 올 때도 그랬다.
귀가를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는 것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마중물이 땅속 물을 길어 올리는 힘이 있듯이 백구의 마중은 지친 하루의 일과를 달래주는 힘이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조금 일찍 본다는 것뿐인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형제들이 백구를 추억하는 것을 백구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추수가 끝나면 곡식을 지키기 위해 여기저기 쥐약을 놓았었다. 목줄 없이 살았던 백구가 돌아다니다 그 약을 먹었나 보다. 흰 눈이 소복하게 내린 겨울날 우리 곁을 떠났다. 어머니는 개장수를 의심했다. 개가 필요해 일부러 쥐약을 던져 줬을지도 모른다고 개장수 탓을 한참이나 했다. 허망하고 슬펐다. 백구의 빈자리는 컸다.
다들 출가해서 집에는 어른 두 분만이 집을 지켰다. 허전함을 채우려고 데리고 온 강아지도 건강하게 잘 자랐다. 식구들을 다 알아봤고 갈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환영해 주었다. 자가용을 이용하다 보니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올 이유는 없어졌다.
마중 못지않게 배웅의 따뜻함도 있다. 배웅에는 쓸쓸함이 더해지기는 한다. 친정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 부모님과 개가 나란히 서서 배웅했다. 차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였으리라. 세 식구처럼 보였다. 둘이 아닌 셋은 작은 위로가 되기도 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정집은 이제 빈 집으로 남았다. 골목 앞에서 배웅해 주시던 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아련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