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오해 한다

나만의 기념일

by 김현주

나는 수영이 좋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물이 무서워 감히 수영 배울 생각을 못 했다.


오래전 해운대로 가족들과 물놀이를 갔다. 내 키를 살짝 넘기는 정도의 물에서 허우적댄 적이 있다. 내 인생 일대기가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죽음 임박할 때 경험한다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알고 있다. 아무도 믿지 않지만 사실이다. 아들, 딸은 장난인 줄 알고 웃고만 있었고 가까이에서 튜브 타던 젊은이가 옷을 살짝 들어 올려 줘서 겨우 물 밖으로 탈출했다. 이 일화는 두고두고 입방아에 오르곤 한다. 물에 대한 공포는 그때의 트라우마 탓이다. 그래서 수영 배우는 것도 미뤄졌다.


간간이 들리는 사고 소식은 생존 수영 정도는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평소, 일상을 공유하던 딸과 드디어 수영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영복과 장비를 구매하는 일조차도 긴장되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가게 사장님은 응원했다. 어렸을 때 수영을 배운 딸은 수업 속도를 잘 따라갔다. 제법 틀이 잡혀가는 딸과 다르게 50대의 물 공포증 환자인 나는 배꼽 높이도 채 안 되는 물에서도 중심을 잃기 일쑤였다. 긴장 탓에 힘이 들어간 몸은 좀처럼 뜰 줄 몰랐다. 그래도 수영장 문턱이 닳도록 매일 갔다. 하지만 풀장 벽을 차고 자유형 하며 전진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내게 자유형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지 의문이 커졌지만, 발차기라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수영장에서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다 선생님이다. 하나같이 힘 빼라는 말을 했다. 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이 안 왔다. 답답했다. 영상도 꼼꼼히 찾아보고 따라 해보려 했지만 그날이 그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풀장 벽을 차고 나가 세 번 정도 팔을 돌려 자유형을 하게 되었다. 입문한 지 3주 차에 일궈낸 쾌거라고 거창하게 생각했다. ‘야호, 내게도 이런 날이 찾아오는구나!’ 이를 앙다물고 노력한 결과물에 강사님과 기초반 동기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공포심도 줄었고 ‘물에서 죽지는 않겠구나!’ 어설픈 자만심까지 생겼다. 늦은 성취지만 뿌듯했다.


돌아오는 길, 딸은 “이런 특별한 날은 꼭 기념해야지!” 하며 빵집에 들러 조각 케이크를 샀다. 수영 초보를 수린이라 부르는데 수린이 탄생을 축하받았다. 당연히 축하 노래와 폭죽도 곁들였다. ‘이게 뭐라고….’

하지만 뭉클했다. 사실, 말이 축하지 3주 만에 겨우 자유형 흉내를 냈다는 것은 흑 역사다. 모르긴 해도 축하를 가장한 측은지심의 발동이었을 것이다. 이유 불문하고 기뻤다. 힘내라는 응원의 조각 케이크는 달콤했다. 역시 딸은 살림 밑천이며 동지다. 선배 관점에서 나름 일취월장한 어미에게 훈수도 잊지 않았다.

“힘 빼시고 힘차게 발을 차시라!”

내게 그날은 잊지 못할 기념일이 되었다.


욕심만큼 실력이 늘지 않았다. 눈물이 글썽거려 보였는지 강사님은 울지는 말라고 했다. 운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차츰 노력은 실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사님도 놀라워했다. 슬슬 물을 즐기기 시작했다. 강습생들은 서로의 자세를 교정해 주기도 하고 자기만의 비법도 나누었다. 자유형과 배영, 평영에 접영까지 도장깨기 하듯 배웠지만 아직도 서툴고 어렵다. ‘그래도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그날의 응원 덕은 아닐까?’ ‘수영 동지로 함께 해 준 딸아 고마워!’


물속에서의 자유로움은 기분 좋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호흡에 집중하며 전진하는 몰입의 시간이 좋다. 힘을 빼고 아가미 호흡을 한다. 누구와 수영을 얘기할 때면 조각 케이크와 촛불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특히 처음 수영을 시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수영 이력을 즐겁게 말하곤 한다. 물에 뜨고 자유형 흉내를 내게 되면 꼭, 자축하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시작이 반이 되는 날이니 충분히 즐기며 기념하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고생 시작이야.’하며 웃는다. 내 얘기가 그 분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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