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고, 니가 해!

계급과 서열

by 정종신

중학교 교실 아침 9시 직전, 조회 시간 직전이었다. 담임교사로서 교탁 앞에서 하루를 준비하며 교실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문득 내 시선은 4 분단 뒤쪽 두 남학생에게로 향했다. 두 학생은 친한 사이였고, 그중 한 명은 학급뿐 아니라 학년 전체에서 힘의 중심에 서 있던, 흔히 말하는 '짱'인 아이였다. 편의상 이 아이를 A라 하고, 그의 친구를 B라고 하자.


A는 B에게 뭔가를 부탁하고 있었다. 얼핏 들리는 바로는 자신의 숙제를 대신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특별히 위압적이지 않았고, 부탁조로 들렸다. 하지만 B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단호했다.

"싫어, 니가 해."

그 말을 듣고 나는 내심 놀랐다. 사실 A에게 그렇게 분명하게 거절할 수 있는 아이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B가 A와 친하다는 이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짐작했다. 그런데도 A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아, 한 번만 해줘."

하지만 B의 대답은 여전히 단호했다.

"싫다고, 니가 해!"

바로 그다음 순간, A의 얼굴이 찌그러지듯 일그러지며 분명한 짜증과 함께 욕설이 튀어나왔다.

"에이 씨팔."

욕설이 터져 나온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두 번이나 거절하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던 B가 급작스레 태도를 바꾼 것이다.

"알았어, 해줄게."

이 짧은 장면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이들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서열과 힘의 논리를 명확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흔히 쓰이는 계급이란 용어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사용하는 '서열'이라는 단어가 더 명확하고 정확하게 와닿았다.


몇 년 후, 인사를 건네는 한 고등학생을 만났다. 처음에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학생이 바로 B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때의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었지만, B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강렬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던 그 순간이, 정작 본인에게는 평범한 일상에 불과했나 보다.

대화를 이어가던 B는 문득 나에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쌤, 그래도 저는요 맞지는 않았어요. 걔가 저한테는 그래도 잘해줬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맞지는 않았다고? 그게 잘해준 거라면, 다른 애들한테는 도대체 어떻게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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