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작은 용기가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줄은 몰랐다.
"May I help you?"
이 짧은 한 마디가 내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인생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명문대 진학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고, 그저 그 목표를 위해 달렸을 뿐이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그때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원하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나의 자존감은 한없이 무너졌다.
인생에 정해진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나의 스무 살은 방황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은 듯했던 그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내 인생의 새로운 문이 열렸다. 그건 바로 누군가의 ‘인솔자’가 된 일이었다.
내 첫 고객은 친구와 함께 간 고궁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들이었다. 영어가 서툴렀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감이 넘쳤고, 내 얼굴에 드리워졌던 어둠은 사라진 듯했다. 여행을 도와주며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명문대가 아닌 관광경영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나의 마지막도전은 옳았다.
뉴질랜드에 가면 별이 쏟아지는 와이토모동굴이 환상이라는 교수님의 강의에 심취되어 지구반대편을 가봐야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우게 됐고 드라마 속 프로페셔널한 호텔리어들을 보며 5성급 호텔의 매니저가 되는 꿈도 꾸었으며 싱가포르항공 승무원의 섹시한 유니폼에 반하여 외국항공사 승무원이 되어 세게 곳곳을 누비는 상상을 해보게 됐다.
뉴질랜드북섬 와이토모동굴
나의 길을 찾지 못했던 나에게 한꺼번에 너무도 많은 꿈이 생기고 말았다.
그 후 2년의 대학시절을 마치고 내가 선택한 곳은 괌사이판 전문여행사였다.
나의 운명이 바뀐 그날 이후로 운수대통인지 7명의 신입사원 중 대표로 뽑혀 사이판본사 호텔에서 한 달 동안 근무하는 행운도 얻었다.
그리고 1년 후 새로운 목표가 생긴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여행사 투어컨덕터(TOUR CONDOCTOR)가 되었다.
그 당시 투어컨덕터 즉 해외여행 인솔자라는 새로운 직업은 밀려드는 해외여행 수요로 인해 가장 떠오르는 직업 중 하나로 주목받았고 꿈울 찾지 못해 방황하던 내가 드디어 여행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 후 나에게는 1998년 IMF,2002년 사스(SARS), 2015년 메르스(MERS)등 여행업에 타격을 준 많은 시간을 겪었지만 나의 투어컨덕터의 삶은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시작된 코로나는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한 달에 20일 이상 세계 곳곳을 누비던 나였기에 한국에서의 생활은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익숙했던 공항, 호텔, 그리고 여행자들 대신 끝날 것 같지 않은 팬데믹과 희망 없이 마주한 현실 속에서 나는 또다시 그 옛날 느꼈던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드디어 또 다른 꿈이 생기게 되었다.
점점 잊혀가는 투어컨덕터로서의 추억들을 그리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겨보자였다.
그 순간부터 나는 과거의 여행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릴 수 있는 열손가락이 있었고 언젠가 쓰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세계곳곳 추억 속의 사진이 있었으며 함께 여행했던 많은 손님들의 인생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지금 나는 작가로서의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여행 인솔자로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독자들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
내가 먼저 다녀온 세상,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이야기들. 이제 그 기억들을 천천히 풀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당신이 아직 만나지 못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