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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자 Oct 01. 2024

아엠 어 티시

귀신도 무서워하는 인솔자가 있다


인솔자로 일한 지 3년 차가 되던 여름, 인솔자실은 동남아에서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귀신 이야기가 나온 나라는 바로 태국, 하지만 나는 동료들의 말을 반신반의했으며,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런 일들은 피로하거나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환상일 뿐이라고 여겼다. 나는 귀신을 실제로 보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 거라며 늘 웃어넘겼다.


그러나 그 믿음은 태국의 유명 휴양도시 파타야, "엠버서더 좀티엔 호텔"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이 호텔은 무려 9천 개의 객실을 보유한 거대한 규모로, 한국과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묵는 곳이었다. 귀신 목격담이 가장 많이 나온다는 호텔 중 하나였지만, 나는 몇 번을 묵었어도 아무 일도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괜한 이야기로 손님들이 불안해할까 봐 투어 중 귀신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았다.


우리 팀은 5박 6일의 태국-싱가포르 일정을 소화 중이었다. 첫날 방콕에서 관광을 마친 후 오후에 파타야로 내려와, 모두 무사히 잠에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역시 귀신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며 평온한 밤을 보냈다.


그러나 두 번째 날 밤, 내 생각은 크게 틀렸다.

그날 저녁, 손님들과 함께 파타야의 화려한 야경을 즐기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까지도 모든 게 순조로웠다. 손님들은 피곤해했고 나도 침대에 몸을 맡기며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온한 마지막 날 밤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한참을 깊이 잠들었던 나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문득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본 '새벽 4시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장면이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장난일 거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려 했으나, 계속되는 ‘똑똑똑’ 소리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동반했다. 공포감이 나를 엄습해 왔지만, 나도 모르게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나는 유리구멍으로 문 밖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문 밖에는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태국 전통 복장을 입고 긴 머리를 한 그 존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그 존재는 아무 말 없이, 단지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대로 뛰어들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나름 젊고 용기 있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온몸은 땀에 젖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도 노크 소리는 계속되었고 나는 그저 이 일이 현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그 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몇 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노크 소리가 멈췄다. 나는 이불속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한참을 누워있었다.

내가 귀신에게 이겼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공포에 떨린 몸은 끝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밤새 뜬눈으로 보낸 나는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손님들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설사 내가 귀신을 봤다는 얘기를 해도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누군가의 장난이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와 똑같은 일을 겪은 이 가 나타났다.


그녀는 우리 팀의 유일한 허니문팀의 신부로   태국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여행지인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대기하던 게이트 앞에서 그녀가 어젯밤 겪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그녀는  남편을 아무리 깨워도 꿈쩍하지 않아 혼자 그 공포를 견뎌야 했고 남편에게 어젯밤일을 말했으나 믿어주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나에게 털어놓았던 것이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분명 우리는 같은 귀신을 본 것이었다.


싱가포르에 도착해서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손님들이 자유시간을 가지시는 동안 나는 현지 가이드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가이드의 반응은 너무나도 담담했다. 그는 오히려 "이맘때쯤이면 동남아에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시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라서, 귀신이 결국 포기하고 떠났을 것이라는 농담 섞인 말을 건넸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귀신을 본 적이 없다. 때로는 그때의 경험이 진짜였는지, 누군가 장난을 친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내가 두려움 속에서도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사실 다시 귀신을 보게 된다 해도 그때보다 더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귀신을 보는 것처럼 믿기 힘들고 두려운 순간들이 많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곤한다.


"귀신마저 물러나게 만든 내가, 세상에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 마음속에는 모두 무찌를 수 있는 창과 방패가 있다. 그 오래된, 그러나 녹슬지 않은 무기를 기억하고 두려움에 맞설 용기를 내자..


내 맘 속에도 오래됐지만 녹슬지 않은 창과 방패가 나를 용기 있게 만들어 주었다.


처음 가는 나라에 대한 두려움도, 생사를 넘나드는 갑작스러운 사고에도 천재지변 같은 인간의 한계가 느껴지는 재해에도 귀신을 물리칠 만큼 강해지려는 나의 의지는  깃발을 휘날리며 손님들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뛰어다닐수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세상살이 누구에게나 수많은 고통과 힘겨움이 따른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과 이야기해 보자. 

그 속에서 뭐든 이겨낼 수 있는 강한 나를 만났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 나를 위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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