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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자 Sep 24. 2024

아엠 어 티시

그때는 그랬지

"라떼 말이야~"  


요즘 MZ 세대들에게는 구세대들의 허풍 섞인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귀 기울여보면 엣추억을 얘기하고픈 엣날사람들의  신나는 외침 일 때가 많다.


 나 또한 가끔씩은 라떼를 외치며 내가 전문인솔자를 시작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내가 처음 전문투어컨덕터를 시작했던 90년대 중반만 해도 신입인솔자들의 출장지는 중국과 동남아였다.

요즘처럼  첫 출장으로 유럽이 배정되는 신입 인솔자는 없었다는 말이다.


뭐든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불만이 없다.

신입인솔자라는 걸 인정한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중국과 동남아출장만 미친 듯이 배정받아도 불공평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패키지여행 전성시대가 도래하여 끊임없이 출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골 어르신분들의 단체해외여행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전국 각지에서 오신 어머님 아버님들은 나 같은 신입인솔자의 메인고객이 되셨다.


게다가 여행사들은 그분들을 단골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마을 부녀회장님이나 이장님을  여행사의 VIP 고객으로 모실정도였다.


그날역시 부녀회장님을 주축으로 가을추수를 끝낸 어르신들의 출동이었다.


첫 만남.. 그야말로 멀리서도 우리 팀임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해외여행 간다고 동네미용실에서 단체로 머리를 하셨는지  어머님들의 파마머리는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이 뽀글거렸다.

같은미용실에서  같은 퍼머머리하신 어머님들

이장님을 비롯해 아버님들 또한 어떠한가! 누가 그리 알려줬는지 칼랄같이 주름 잡힌 기지바지에 멋을 한껏 부리고 오셨다.

심지어 딸내미 결혼식에 입고 오랫동안  묵혀놨던 것 같은 빛바랜 양복을 아래위로 빼입고 낡긴했지만  광을 번쩍번쩍 낸 정장 구두를 신으신 아버님도 계셨다.


다음은 비행기다.

거의 대부분 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오셨기에 해외여행이 처음일 뿐만 아니라 비행기도 처음이셨다.

창가에 앉으신 분들은 창문밖으로 성냥갑처럼 보이는 집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으며 복도 쪽에 앉으신 분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사실 화장실 가는 건 복도 쪽이 좋은데 말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첫 기내식이 나왔다. 그러나 다들 망설이시며 주위를 살피셨다. 이것이 공짜인지 사 먹어야 하는지 심오한 고민을 하시던 귀여운 어머님 아버님들께 나는 한줄기 빛이 되어드렸다.


"이거 돈안내요" "공짜예요~"


그리고 덤으로 음료와 맥주도 그리고 위스키를 비롯해 모든 양주도 공짜라고 말씀드리니 세상을 다 얻으신냥 좋아하셨고 그 덕분에 밀려드는 어르신들의 주문에 승무원들은 분주해졌다.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귀여운 유치원생들처럼 내가 흔드는 깃발뒤로 줄을 스셨다.

입국장까지 걸어오는 동안 뽀글이파마머리 휘날리며 이 열 종대로 내 뒤를 쫓아오시는 어머님들과 신사복입은 아버님들은 어느새 다른 나라 여행객들의 시선을 듬뿍 받았다.


입국장에 도착하니 같은 미용실 같은 사진관에서 찍은 여권사진은 입국장 직원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금 전 입국심사받은 분과 똑같이 생기신분이 또 들어오시니 말이다.

어쨌든 씩씩한 손님들은 첫 해외여행 입국신고식을 무사히 마치셨다.


이제 첫날관광을 마치고 드디어 호텔로 향했다.

물론 호텔도 생애 처음이시다.

호텔에 들어오시자마자 무지 비싼 여관에 왔다며 참으로 좋아하셨다.


체크인을 마치고 키를 나눠드렸다.

호텔 측의 배려인지 여행사의 능력인지 모든 일행이 한 층으로 배정되었다.

모두 같은 층이라고 말씀드리니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그런데 10분 뒤 방체크를 하러 간 나는 인솔자 역사상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을 보게 됐다.

그건 바로 호텔객실 문 앞에 가지런하게 벗어놓으신 어르신들의 신발이었다.

부녀회장님과 이장님도 호텔은 처음이셨던 것 같다.

어르신들은 그저 그분들이 하시는 대로 따라 하셨음이 분명했다.

내 마음은 순간 찡했다.  정말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AI 가 만들어준 그때 그시절의 장면

다음날부터는 더 이상 복도에 나와있는 신발은 없었다.

전날밤 나는 방방마다 다니며 호텔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 되는 고급여관이라는 걸 알려드렸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아 참으로 아쉽다.

 "호텔은 처음이지?"라는 제목으로 복도에 벋어놓으신 어르신들의 신발사진을  세계적인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보냈더라면 그 순박한 장면을  어쩌면 세계의 많은사람들이 함께 볼수있었을텐데...

어느 날 문득 그분들이 그리워질 때 꺼내볼 수 있었을 텐데...


라떼는... 그렇게 순수하신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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