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영원한 사랑의 서식지, 이터널 선샤인

<우편함을 확인해 보세요>2번째 편지

by 텔리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깊게 사랑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간의 연애 속에서 제가 지니게 된 믿음은

영원한 마음이란 없다는 거였어요.

비단 연애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도

시간이 지나 그 감정들을 들여다보면

이전과 같은 형태로 남아있지 않더라구요.

그 당시에는 정말 좋아했고 미워했었는데

이젠 정말 초연 해졌달까요.

<이터널 선샤인>은 참 의도치 않게 여러 번 본 영화예요.

고등학생 때는 명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틀고

방 안에서 보는데 어쩜 지루한지 꼬박꼬박 졸았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보게 된 건

이 영화가 인생영화라는 누군가의

추천 때문에 다시 보게 됐어요.

2번째로 봤을 땐 서사 구조는 완벽히 이해됐지만

주인공 두 남녀가 왜 다시 재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어차피 다시 헤어질 텐데 왜 다시 만나는 거야?

그리고 가장 최근에 본 건 1년 전이었는데요.

첫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어쩐지 펑펑 울고 싶은 마음에

그래 이별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을 틀자! 하고 관람했습니다.

연애경험 덕분인지 아니면

순전히 여러 번 봐서 쌓인 내공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이전에는 느껴지지 않던 감정들이 확 와 닿더라고요.

영화의 중심 소재는 기억이에요.

남자 주인공 조엘은 전 여자 친구인 클레멘타인이

자신과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지운 것을 알고 본인도 기억을 지우려 하죠.

하지만 막상 병원 직원들이

조엘의 머리에 기억을 지우는 장치를 꼽고

클레멘타인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지우려하자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을 잃고 싶지 않아서

조엘은 이리저리 도망 다녀요.

클레멘타인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도

함께한 기억은 도저히 버릴 수 없어해요.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고통을 주긴해도

추억이 주는 기쁨의 양이

이별이 주는 고통의 양보다 더 큰 걸까요.

영화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면

조엘은 더 이상 피해 다닐 수 없음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클레멘타인과 함께했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찬란하게 떠올려요.

그렇게 기억이 모두 소실된 상태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우연히 처음 만났던 그 바닷가에서 다시 만나요.

서로가 누군인지 몰라보는 상태에서 둘은 호감을 느끼고

함께 자동차를 타고 조엘의 집으로 향하죠.

조엘은 우편으로 받은 정체불명의 테이프를

자동차 라디오에서 틀고 테이프의 내용으로 인해

두 사람이 전에 연인 사이 었다는 것을 깨닫죠.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함께했던 기억이 모두 되살아나지는 않아요.

단지 두 사람이 과거 연인이었다는 사실만 짐작할 뿐이죠.


이 모든 사실이 혼란스러운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마지막 선택은 다시 사랑하기로 하는 거예요.

어째서 한번 헤어진 사이인데 다시 만나는 걸까.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에게 끔찍하게 상처를 준 사이인데 말이죠.

그건 아마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웠기 때문일 거예요.

단순히 서로에게 상처를 준 기억을 잊어서

다시 만난다는 말은 아니에요.

실패할 걸 알지만

결과가 헤어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잃어버린 사랑의 맺음과 숙성

그리고 썩어버리는 그 모든 과정을

다시 감내해기로 선택하죠.

그 과정을 정확히 응시해내는

모든 일련의 과정이 연애니깐요.

사랑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사람이 나를 끝까지 사랑할까. 우리는 평생 함께 할까.

이런 물음들은 영생을 바라는 마음과 별 다를 바 없다 생각해요.

두 사람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에 앉아

지나치는 순간순간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응시하겠죠.

그리고 목적지에 내려 돌아 선 순간 헤어지겠지만

뒤를 돈 순간부터

두 사람이 함께 했었던 여행을 떠올리며 살아갈 거에요.

사람은 정말 오래 살잖아요.

랍스터만큼은 아니지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대부분은

추억을 회상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추억단지에 담을

아름다운 시간들을 많이 수집해야 하죠.

당장 아프다고 그 모든 추억을 버릴 수 없어요.

고통은 일시적이지만 추억은 떠올릴 때마다 매번 따듯한 빛을 내요.

가끔은 정말 추억이라 부를 수 없는 끔찍한 시간도 있다는 걸 알지만

훗날 그 시간들이 나를 얼만큼 성장시켰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며 미소 지어짓기도 했었던 거 같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경험이니깐요.

당신도 꼭 똑같을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거 같네요.

한동안은 사랑에 참 회의적이었어요.

영원한 사랑 따윈 없다고 흥!

하면서 지나가는 커플들을 쏘아보기도 했었죠.

바람 좀 들고 물기가 좀 마르고 나니깐 드는 생각이 있어요

사랑하는 그 순간에만 사랑을 외칠 수 있는 건 아니 더라는 거예요.

어느 날 책상에 앉아 그와의 시간들을 잔잔히 떠올리면

그 역시 사랑이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며 사랑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사랑이 영원히 서식할 수 있는 곳은 추억 위 일거예요.

나의 가장 이터널한 곳에서

사랑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선샤인이 비치겠죠.





This memory will soon be gone.

What do we do?


Just enjoy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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