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당신에게 처음 보내는 영화 편지

<우편함을 확인해 보세요> 1번째 편지

by 텔리
시월애(2000)

당신은 무얼 좋아하시나요. 당신이 좋아하는 그것은 당신 스스로 혼자 찾아내서 좋아하게 된 것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그것을 좋아했었기에 어느새 당신도 좋아하게 된 건 가요.

지금 제 주변을 돌아보면, 제가 사랑하게 된 것들은 사랑했던 이들이 좋아했던 것들이에요. 타인의 사랑을 조금씩 조금씩 빌려와서 원래 제 것이었던 것 마냥 사랑하고 있달까요.

전 매일 저녁 향을 피워요. 누군가가 향을 좋아하세요? 하고 물어오면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큼 향을 피우는 그 순간을 좋아한답니다. 제가 향을 처음 피우게 된 건 전 애인 덕분이죠. 그 전에는 향을 피우겠다는 시도조차 해본 적 없죠. 또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최근에 빠지게 된 어느 뮤지션은 좋아하는 유튜버 덕에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이 끼워놓고 간 퍼즐 조각 덕분에 저의 취향이라는 하나의 작품이 조금씩 완성되어가고 있답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

제가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를 적는 이유는 이름도 모를(어쩌면 언젠가 우리 한 번은 마주쳤을 수도 있겠지요)

타인에게 제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에요.

당신과 저의 마음의 결이 한 자락이라도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면,

우리가 세상 전부를 똑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순 없더라도,

영화의 한 대목만은 비슷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보낼 편지는요 저의 사적인 경험과 시선으로 점철된 영화 이야기일 거예요.

거기에 조금 더 소망을 덧붙여보자면 당신 역시도 제 편지를 읽으며

당신만의 경험과 감정을 떠올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영화를 볼 때 항상 취하는 자세처럼요. 전 영화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거든요.

어떻게 해서든 영화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저와 영화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드려고 하죠.

현실에서 쏟아내지 못했던 감정을 인물들에게 투사해서 울기도 하고요.

다음 편지가 당신에게 도착할 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찌질함과 사적인 이야기가 잔뜩 담긴 편지를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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