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불편하지 않은 코미디를 만들 능력

예민함을 신선함으로 조리하는 감독 '폴 페이그'

by 텔리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 지 잘 아는 것은 중요하다.그리고 그 장점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오랜시간동안 코미디 배우로서 커리어를 쌓아온

폴 페이그는 어떻게 해야 관객을 웃길 수 있는 지를 잘 알고 있다.그렇기에 코미디 영화로 필모그래피의 첫 단추를 꿰멘 그의 선택은 현명했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개봉 이전까지는, 폴 페이그 감독은 안전한 바운더리 안에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오히려 무리수를 던지다 영화를 말아먹는 흔한 감독들보다는 폴 페이그가 백번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페미니스트 감독으로도 유명하다.그의 행보는 물론 필모그래피의 모든 영화가 여성 중심 서사이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폴 페이그의 여성 서사는 비단 신념적인 상징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할리우드 내 여성 서사의 희소성을 신선함으로 바꾸어내 관객들이 이제껏 체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폴페이그의 영화는 한층 더 새로워진다.



웃기는 여자들




관객을 잘 웃기는 감독은 많다. 하지만 폴 페이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여성 캐릭터들이다. 더욱 자세하게는 멜로 서사를 주축으로 하지 않아도 나아갈 수 있는 여성 캐릭터들이다.이전의 코미디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주연으로 배제되어 왔었다. 대게는 주인공의 욕망을 투사하는 대상체였고, 여성 캐릭터들을 얻기 위한 주인공의 고군분투 속에서 유머가 발생했다. 여성 주연 코미디를 생각해보자면, 역시 로맨틱 코미디의 범주안으로 갇혀버린다.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작인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역시 멜로 서사를 빼고서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폴 페이그의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에게는 로맨스를 빼더라도 유머를 충분히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다.


Bridesmaids(2011)


드라마 감독으로서 입지를 다져가던 그에게 할리우드 진출을 안겨준 첫 작품은 2011년 개봉한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bridesmaids)>였다.사랑하는 전 애인의 결혼식을 망친다는 여타 영화들과 달리 폴 페이그의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은 주인공 애니가 자신의 친구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펼쳐지는 여성 인물들간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 내에서 남성과의 로맨스 서사가 배제된 것은 아니나, 로맨스는 단지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주기위한 부수적인 플롯으로 등장한다.이 작품의 큰 매력은 두말할 것 없이 서문에서 이야기했 듯 여성 중심 코미디를 그려냈다는 것에 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은 주인공의 애인, 혹은 주인공이 선망하는 욕망의 대상체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문제점과 고민,결핍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다.결혼식의 주인공 릴리언의 동창인 '리타'는 남편과의 성관계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지 오래고, 직장동료인 '베카'는 사회가 정해 준 왕도로 살아온 나머지 진정한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지 못한 채 결혼을 해버린 인물이다.이 영화에서 가장 유쾌한 캐릭터를 꼽자면(사실 각각의 캐릭터 모두가 매력적이지만) 폴 페이그의 뮤즈라고 할 수 있는 멜리사 메카시가 연기한 '메건' 캐릭터다. 김보성의 여자버전이라고 불러도 무색하지 않은 '메건'은 우리가 이제껏 영화에서 보아왔던 소위 '상남자'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해와 보여준다. 메건은 처녀 파티에서 레슬링을 하자고 제안하기도하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성에게 플러팅을 한다.이러한 캐릭터들의 등장은 할리우드가 여지껏 여성 캐릭터들을 편협한 태도로 대해왔음을 시사할뿐만 아니라 신선하고 새로운 인물들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했다.



A Simple Favor(2018)



Don't say sorry. You don't need to apologize.
It's fucked-up female habit.

이럴 때 마다 사과할 거 없어요. 여자들이 버려야할 나쁜 습관이죠.



2018년 개봉한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폴 페이그의 장기가 코미디에만 국한된다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은 작품이다.코미디와 스릴러의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피치 퍼펙트>로 유명한 애나 켄드릭과 드라마 <가십걸>의 주인공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주연을 맡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들로인해 가까워진 두 여자 '스테파니'와 '에밀리'는 외관적으로나 성향적으로나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다정하고 순진한 전업주부인 '스테파니'와 달리 '에밀리'는 시크하고 터프해보이는 워킹맘이다. 영화는 에밀리가 사라지기전까지는 코미디의 톤을 유지하다 에밀리가 실종되고 난 후 부터는 맑은 하늘에 긴 먹구름이 끼 듯 어두운 분위기로 접어든다.<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묘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사표 엄마와 무심한 워킹맘의 이미지를 비틀어버리다는 것에 있다. 마냥 사랑스럽고 천사처럼 보여지는 스테파니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이나,당당하고 강인해 보이는 워킹맘 에밀리의 나약한 면들을 서서히 수면위로 끄집어 올리며 영화는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나간다. "나는 강한 여성이나 약한 여성이나 그들 모두를 가치있게 여긴다"라는 폴 페이그의 말처럼 영화는 한가지 이미지의 여성상만을 찬양하지 않는다.영화는 그러한 가치관을 반영하듯 스테파니나 에밀리의 선악을 판단하는 것을 피한다. 오히려 많은 비밀들과 복잡한 인물들의 인생사를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손쉽게 파악해 버리는 타인의 이미지란 종이 한겹에 불과함을 깨닫게된다.







말빨을 얹어 잔뜩 버무린 b급 영화



폴 페이그가 취하는 코미디 영화들은 독특한 서사구조를 지니거나 새로운 촬영방법으로 촬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상투적인 틀 안에 채워넣는 내용물들이 새롭고 유쾌하기때문이다.

장시간 동안 배우로 활동한 폴페이그의 경력이 말해주는 듯, 그가 적어내는 대사는 맛깔난다.


The heat (2013)


2013년 개봉한 <더 히트>는 여성 주연의 버디물이다. 주인공 애쉬번 역에는 산드라 블록이, 멀린스 역은

폴 페이그의 짝궁 멜리사 메카시가 연기를 했다. 거물급 범죄자를 잡기위해 보스턴으로 내려온 FBI 요원 애쉬번과 지역경찰 멀린스가 함께 공조하게되는 스토리는 기존의 버디물과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주인공 성별의 변화와 그 안을 채우는 가지각색의 유머코드는 영화를 신선하게 만든다. 원리 원칙을 중요시 여기고, 이론에 입각한 수사를 펼치는 ‘애쉬번’과 감으로 범인을 추론하고, 주먹부터 나가는 형사인 ‘멀린스’의 상반된 성격과 둘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티키타카는 버디물의 묘미를 그대로 살려낸다. 멜리사 메카시가 연기한 형사 '멀린스'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에 나오는 메건을 그대로 데려왔다고봐도 무방하다. <더 히트>부터 시작된 폴 페이그식 무차별 욕설 대사는 이 영화의 묘미다. 문 좀 닫으라고 명령하는 애쉬번에게 니 머리를 문지방에 대고 200번 닫아줄게라는 대사는 본문에서 볼 때는 꽤나 섬뜩하지만 멜리사 메카시는 대사의 재미를 120%까지 끌어올려 맛깔나게 소화한다.


SPY(2015)



이번에도 역시 멜리사 메카시가 주연을 맡은 영화 <스파이>는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주인공 수잔은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서 현장요원을 지원하는 내근요원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핵 무기 거래를 막기위해 FBI내의 엘리트들이 첩보작전을 펼치지만 번번히 실패하거나

사망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국장은 비교적 신분이 덜 노출된 수잔을 현장요원으로 보낸디.

매끈하고 맵시있는 고품격 스파이 영화와 달리, <스파이>는 기존의 스파이의 이미지랑 많이 멀어보이는 평범한 '수잔'이 첩보작전을 펼쳐나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영화는 기존 스파이 영화의 특징인 미묘한 심리전과 액션씬보다는 수잔의 거친 입담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들면 "내 한쪽 손은 메시이고 한 쪽 손은 호날두인데, 한놈은 니 똥구멍으로 한놈은 니 입으로 들어가서, 둘이 중간에서 만나면, 니 심장을 존나게 차버릴거야." 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배우가 대사를 내뱉는 동안에도 실제로 저게 가능한가의 의문이 들면서도 맛깔나게 연기해내는 멜리사 메카시의 연기에 웃음이 나온다.

영화 스파이의 재미는 빌런으로 나오는 레이나와 주인공 수잔의 미묘한 우정관계이다. 죽은 레이나의 엄마와 닮은 수잔의 외관 덕분인지 수잔과 레이나의 관계는 마치 철딱서니 없는 딸내미를 챙기는 모녀지간같다. 레이나의 보디가드로 위장취업했지만 상사인 레이나에게도 수잔은 서슴치않고 잔소리를하며 욕설을 마구 퍼붓는 모습을 보면 "이거 원래 스파이 영화지..?잠깐 둘은 원래 서로 적이지?"라고 생각하게된다.

둘의 유대감덕분인지 마지막 장면에 레이나가 잡혀갈때는 아쉬움마저 남는다.




누군가는 예민한 관객들로인해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일이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에 폴 페이그 감독은 이렇게 응답한다

"전 그런 어쩌면 예민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깨어있는 시각이 좋아요.

그런 의견들이 나온다는 것은 사람들이 발전해가고 있고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려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죠."

극장 내 관객들의 10명 중 9명이 재밌게 웃는 코미디보다 극장 내 관객들이 소소하게 웃더라도 10명 모두가

웃는 유머를 만드는 일이 맞지 않을까. 구시대나 먹혔을법한 유머가 더이상 소비되지 않는다며

억울해하기보다는 이제껏 유머의 대상으로 소비되어왔던 대상에대한 무지를 겸손히 인정하고

신선하고 모두가 유희할 수 있는 유머를 만들겠다 다짐하는 자세가 대중예술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적합한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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