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붉은 사막을 가다

남아공-나미비아 여행 6일차

by 르겔

Sesriem에서의 2일 차, 아프리카에서 캠핑을 처음 한 뒤 온갖 무용담이 오갔다. 자려고 누웠더니 동물 울음소리가 들렸다느니, 텐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느니 이런저런 말들을 했다. 텐트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는 밤에 불어온 바람이 워낙 강해서였던 것 같기는 하지만 동물 울음소리만큼은 진짜 같았다. 캠프사이트 주인 할아버지가 근처에 하이에나들도 살고 있는데 샤이해서 얼굴 보기는 힘들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 밤에 어떤 동물이 그리 울부짖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나미브사막을 둘러볼 수 있는 날이었다. 캠프사이트를 정리하고 사막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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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붉은 사막 속으로 들어갔다.

먼지 날리는 길을 따라 Sesriem으로 진입했고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보니 도로변보다도 훨씬 메마른 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높은 사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현실적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저 창을 열고 저 먼 곳을 지켜보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멋있다', '크다'와 같은 일상적인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강렬한 햇빛이 만들어 낸 붉은 사막의 소묘는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위용을 뽐냈다. 멀리 있기도 했거니와 낯선 지형에 말미암아 그 높이도 가늠할 수 없었다.




조금 더 달리다 보니 Dune45가 나타났다. 공원 내에서 오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구 중 하나였으며 꽃보다청춘에서 청춘들이 올랐던 그 사구였다. 사구는 가까이서 볼수록 더 붉었다. 오래전 산화한 철 성분을 머금은 모래들이 그곳에 머물렀나 보다. 붉은 것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미브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사막에 한 번 안겨보고 싶어 13,200km를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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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는 생각보다 높았고, 모래는 생각보다 고왔다.

사막의 품에 안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론 나를 품어주기야 했지만 Dune 45에 오르는 길은 멀고 힘들었다. 입자가 고운 모래에 발이 푹푹 빠졌고 신발은 무거워졌다. 사구의 높이는 150m, 등산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모래 언덕을 오르는 일은 또 달랐다. 그래도 기왕온거 끝까지 올라가보자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중간중간 앉았다가 모래도 던졌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천천히 올라갔다.


나미브 사막

사구를 오르며 사막을 직접 내 발로 걸으면서 오묘한 자연의 이치를 느끼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낯선 모습의 대자연에 우리는 탐험심 가득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언제 또 붉은 사막을 걷고 사구를 오르겠는가. 사구 꼭대기에서 나미브 사막을 온몸으로 느끼며 가만히 서있던 그때의 황홀경은 이미 희미해진 것 같다. 하지만 그 순간은 내가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들을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아련한 순간이다. 그때 나미비아의 하늘과 사막이 줬던 느낌들은 이제 내 오감 중 무엇으로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이 강렬히 각인되었다는 사실은, 내 내면에서 그때가 불쑥 튀어 오르는 경험 때문에라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의 어느 한순간에 잠시 다녀올 수 있다면 나는 나미브사막 Dune45에 말없이 서있던 그 순간을 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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