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나미비아 여행 5일차
인간이 가진 동물로서의 본성인지, 아니면 내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황량하고 광활한 것에 심장이 뛴다. 높은 곳 어딘가에 올라 메마르고 너른 벌판을 바라보는 일, 그야말로 벅차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드넓게 펼쳐진 대자연 속 대지를 꿈꿨다. 그리고 드넓은 그곳에 메말라가고 버려지고 남겨진 모습들에 눈길이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황량함에 대한 동경이 항상 있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오밀조밀한 자연의 모습도 사랑하지만 먼 이국의 그 황량함은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어서 그런지 괜히 희구하였다. 그래서 나미비아를 선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넓게 펼쳐진 사막과 바다에 내 마음은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트후크 시내를 벗어난지 채 얼마 되지 않아 광활한 사바나가 나타났다. 많지 않은 나무와 짧은 풀들. 겨울이라는 계절을 맞이하여 나미비아의 대지는 메말라있었다. 그곳은 황량 그 자체였다.
빈트후크 근교에 포장도로가 깔려있어 생각보다 도로 사정이 좋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얼마 안 가서 오프로드가 나타났다. 가다보니 깨달은 일이지만 Sesriem까지, 그리고 이어서 왈비스베이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거의 대부분이 오프로드였다. 완전 자연은 아니고 나름 비포장도로는 되지만, 한국의 도로 사정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꽤 조심스러워야만 했다. 모래밭에 돌도 많아서 차가 통통 튀거나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을 쉽게 받았다. 결국 안전 주행을 위해 렌트카 업체에서 알려준대로 타이어 압력을 낮추고 달리기로 했다. 가뜩이나 2인용 텐트 두 개에 의자, 가스, 각종 식량에 4명의 개인 가방까지 짐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스릴과 함께 경각심을 안고 운전했다.
한참을 길을 가다가 주전부리와 라이터를 살 겸 작은 주유소에 들렀다. 이날 저녁부터 이틀 간 캠핑을 해야하는데 생각해보니 불을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아쉽게도 성냥만 있다고 하여 성냥을 사고 나올까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과자와 빵을 조금 사자고 했다. 오렌지만으로 버티는 주행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데 동네 아이들이 몰려있었다. 가끔 관광객들이 지나가다가 들르면 이렇게 나와서 신기하게 쳐다보나보다. 몇몇 아이는 1달러?였나 이런 말을 외치면서 용돈을 달라고 했는데(빈곤에서 비롯된 구걸로 보이지는 않았다.) 동네의 꽤 큰 어르신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며 그러지 말라고 소리쳤다. 아이들이 잘못된 버릇을 들이지 않기를 바라시는건지, 혹은 어른으로서 보이는 자존심의 표출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행동에 담긴 작은 태도 하나가 그 사람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 비가 왔는지도 모르게 건조하여 흙먼지가 휘날리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캠핑장에 도착했다. 정말 조용한 협곡 근처에서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곳이었는데 북한 관계자들이 들른 적도 있다고 했다. 파이어 우드를 구매하고 할아버지의 안내로 쌍안경으로 마운틴 제브라를 구경한 뒤 우리의 캠핑 사이트를 찾아갔다. 텐트를 설치하고 각종 장비와 짐을 내려두고 가볍게 길을 다시 출발하고자 했다. Sesriem 출입구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시간이었고, Sesriem Canyon이나 Dune45 정도는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마운틴 제브라를 찾는데 시간이 꽤 걸렸던게 한 몫 했던 것 같다.
캠핑장에서도 40분 가량을 더 달려 Sesriem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나미비아의 메마른 광경들을 집약적으로 볼 수 있는 Sesriem은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던 곳이다. 비록 많은 것을 볼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자연을 느낄 수 있기에 출입 할 때마다 내야하는 입장료도 조금은 마음 쓰렸지만 감당할 수 있었다. 국립공원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단순히 입장료를 결제할 뿐만 아니라 식료품도 살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식량조달이 용이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져 맥주를 사고 말았다. 나미비아는 독일의 식민지배를 경험했다. 그 경험은 물론 여타 많은 것을 남겼겠으나 맥주 만드는 기술은 단연 나미비아의 살 속까지 스몄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빈트후크 맥주의 맛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물론 황량하고 메마른 나미비아를 몸소 달리다보니 시원하게 넘길 맥주 한 병이 필요했던걸지도 모른다.
Sesriem Canyon은 국립공원 내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한군데였다. Dune을 한군데 올라가보고 싶었고, 데드블레이를 방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 협곡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미비아 여행을 하면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협곡이라는 Fishriver Canyon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무리한 동선과 일정은 병폐를 낳는다는 생각이 강한 나로서는 우리 일정에 Fishriver Canyon 방문 계획을 넣을 수 없었다. 그래서 비록 규모는 조금 더 작아도 Sesriem에서 협곡을 걸어보고 싶었다. 웅장한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강렬함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크게 느껴진 것도 있다. 내 손이 닿을 수 있어보이지만 사실 닿을 수 없는 수준의 거대함. 주변을 둘러보고 잠시라도 한눈팔고 사진을 찍다보면 어느샌가 친구들은 점처럼 작아지고 있었다.
누가봐도 메마르고 황량한 이 협곡에서도 재밌는 사실은 생명작용이 꽤 활발하다는 것이다. 뒤이은 글에서도 언급할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사막지대에서 생명활동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운 나쁘게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릭스와 겜스복은 Sesriem 국립공원 일대에서 가끔씩 목격된다. 마른 느낌이긴하지만 가끔가다 나무도 한 두그루 찾을 수 있고 나무 줄기를 보면 도마뱀이 붙어서 쉬고 있기도 하다. 높을뿐이지 모래언덕에 불과한 Dune(사구)에서도 꽃이 피며 딱정벌레가 발자국을 남긴다. 거칠고 건조하며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Sesriem Canyon도 무언가에게 세상의 전부이고 풍요로운 땅일지 모른다.
나미비아에서의 첫 캠핑이었기에 모두가 신나고 설렜던 날이다. 빈트후크에서 공수해 온 고기로 스테이크를 굽고, 꼬챙이에 끼운 소시지를 모닥불 직화로 구웠다. 저녁을 먹고나서는 모닥불 앞에 앉아 지는 해와 밤하늘의 은하수, 그리고 무수한 별들을 바라봤다. 우리의 밤이 덜 깊었는데 모닥불이 약해진다 싶으면 장작을 더 넣었고, 자금관리인 내가 쪼잔하게 굴며 장작대신 쓸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우러 다녔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불을 지폈고 맥주 한 잔에 미래의 일들을 떠들고, 또 한 잔에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제는 잠잠해져가는 불씨를 그냥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다음날 아침 일정을 괜시리 상기하며 각자의 잠자리로 들었다. 나미비아의 기후와 대지는 황량했지만 우리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