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리엠에서 스와코프문트까지

남아공-나미비아 여행 7일차

by 르겔

대이동의 날이 밝았다. 세스리엠에서 스와코프문트까지 이동하는 382km의 먼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별한 일정은 없었고 단지 이동하는게 전부였다. 중간에 월비스베이를 경유하여 홍학을 볼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하루가 될 터였다.


아침을 간단히 챙겨먹고 여정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햇살이 강렬해졌다. 나미비아 건기의 햇살은 매우 강렬하다. 한낮도 한낮이지만 아침과 저녁 시간대에 직접 비추는 햇살은 정말 눈부시다. 사방이 사막에 가까운 비포장도로인 나미비아에서 선글라스 없이는 운전이 힘들다. 마침 대이동의 날 운전을 맡은 친구는 선글라스가 없는 유일한 한 명이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햇살이 정면으로 들이치자 친구는 운전 불가를 선언했다. 그렇게 하필 그 때 조수석에서 길잡이를 담당하고 있던 내가 운전자가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얼마나 멀리 이동했을까. 하필 세스리엠에서 스바코프문트까지 이동하는 길은 거의 사진과 같은 길이다. 마땅히 쉬어갈만한 마을도 없었고 괜히 마음도 급해서 그저 열심히 이동했다. 오르막을 넘고 계속해서 직진을 해도 같은 길만 반복된다. 끝없는 지평선을 보면서 달리는 느낌이 이런걸까. 건물들이 즐비하거나 지표로 삼을만한 산이 많은 한국과 달리 나미비아는 수도인 빈트후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길이 이와같은 인상을 준다. 솔솔 잠이 오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심지어 상당 구간은 코너링이 필요없는 직선 주로이다. 그저 악셀만 밟고 있으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IMG_3475.JPG 길의 끝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미비아의 비포장도로에서 한 눈을 팔았다가는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여행가기 며칠 전에 아프리카 여행 커뮤니티에는 젊은 한국인 여행객의 사고사례가 퍼졌다. 비포장도로에서 차량 전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모래바닥이다보니 차가 미끄러질 여지가 크고, 타이어 압력 조절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금 과격하게 코너링을 했다면 사고가 나기 쉽다. 운이 나쁘면 타이어가 터질 수도 있다.


실제로 도로변에서 수리업체를 기다리는 차량을 보기도 했다. 심지어 이미 파손되어 굴러다니는 자동차 범퍼, 타이어 뿐만 아니라 그냥 버려진 자동차도 있었다. 지루하고 지칠만한 때가 되면 마침 인근에는 저런 무시무시한 광경이 보였다. 아무리 평범한 직선 주로라도 정신차리고 운전을 해야했다. 꽃보다 청춘에서 여행을 온 것처럼 꽃다운 나이에 더 넓은 세상을 보러 온 것이었지, 꽃다운 나이에 아주 먼 세상으로 떠나려고 나미비아에 온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길을 가다보니 길의 모양새가 많이 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높은 지대로 올라간 것 같더니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 같았다. 난데없이 산지가 나타나고 협곡지대를 지나게 되었는데 길도 험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심해졌다. 온통 비포장도로인데다가 좁은 길 맞은 편에서도 차량이 오고 있으니 행여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무서웠다. 핸들 한 번 잘못 돌리면 산길을 따라 저 아래 어딘가로 미끄러질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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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코프문트로 가는 길에 협곡지대를 지났다.


중간에 인근 지형을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고 잠시 차를 세웠다. 협곡을 차로 지나는 일은 무섭고 긴장됐지만 발 아래 놓인 협곡을 구경하는 것은 또 좋았다. 세차게 바람이 불어오는 골짜기 아래를 바라보며 갑자기 나타난 높은 지대를 즐겼다.




협곡을 지나고도 한참 열사의 땅을 지나자 지형지물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작은 호수들고 홍학이 보이기 시작했다. 월비스베이였다. 이미 출발한지 5~6시간이 지난 상태였고 우리는 제대로 끼니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였다. 홍학도 홍학이지만 밥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쇼핑타운으로 들어갔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만만하고 무난하게 시켜먹었던 해산물 플래터로 역시나 한 끼를 만만하고 무난하게 때우고 월비스베이 바닷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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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홍학때문에 경유한 월비스베이


위 오른쪽 사진에서 잘은 보이지 않겠지만 월비스베이의 상징물은 홍학인 것 같다. 월비스베이라는 지명과 함께 쓰인 마크에는 홍학이 그려져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홍학만큼 이 동네를 상징하기에 많고 특색있는 것도 없었다. 홍학들이 해변에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사람을 상당히 경계했기 때문에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지만 홍학은 분명히 많았다. 아래 가운데 사진에 바다 위의 거뭇거뭇한 물체는 전부 홍학이다. 햇빛때문에 붉은 빛이 사진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분명 홍학이었다. 그리고 홍학 발자국이 바닷가에 사방으로 찍혀있었다. 한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 달아나는 홍학이었기에 가까이서 관찰할 수 없었고 사진으로 제대로 담지 못해서 더욱 아쉬웠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홍학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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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을 찾아나선 월비스베이의 바닷가




홍학의 아쉬움을 뒤로한채 얼마남지 않은 여정을 계속했다. 스와코프문트로 들어가서 이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다시 길을 떠난지 얼마 되지않아 아쉽지만 우리는 다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한쪽은 곱디고운 모래로 된 사구, 한쪽은 드넓은 대서양이 펼쳐진 광경을 만났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푸른 빛깔의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사구는 정확히 나미비아에서 그렸던 모습이다. 아마 나미비아의 국기는 이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푸르고 드넓은 대서양과 끝없이 펼쳐진 황야,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의 나라. 내가 찾던 나미비아는 아래의 사진 한 장에서 가장 함축되어 있다.


나미비아 그 자체였다




IMG_3527.JPG 고래 뼈를 보고 한껏 신났다


마침 길가에 멈춘 뒤 바다를 바라보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물체가 있었다. 나뭇가지라고 하기엔 우리가 아는 나무의 감촉과 너무 달랐고 모양새도 특이했다. 크기는 엄청 크지만 오히려 동물의 뼈라고 보는게 더 설득력있을 것 같은 모양새와 감촉이었다. 우리는 그 물체를 고래 뼈로 규정했다. 고래 뼈일 수 밖에 없는 물체였다. 언제 대자연에 놓인 고래 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미비아의 한 바닷가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너무 신기했고 멋있었다. 그곳은, 7일차였지만, 나미비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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