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나미비아 여행 10일차, 11일차
아프리카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 하이라이트를 찍을 곳으로 향했다. 야생동물의 땅, 에토샤국립공원이 목적지였다. B1도로에서 C38도로로 갈아탄 뒤 계속해서 북쪽을 향하다 보면 에토샤국립공원임을 알리는 게이트가 등장한다. 게이트에서 얼마나 머무를 예정인지 어디서 잘 것인지 등을 간단히 말하고 본격적으로 국립공원 안으로 내달린다.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고 지시에 따라 차량 주행속도도 낮췄다. 더 이상 인간의 영역이 아닌, 야생동물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길은 위의 사진처럼 이어졌다. 더 이상 포장도로는 볼 수 없었고, 세스리엠 인근에서와 같은 비포장도로가 등장했다. 야생동물의 땅에 임시로 내놓은 길이기 때문에 상태는 더욱 좋지 않았다. 그래도 동물들과 길을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물론 우리도 자연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동물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배려하며 빠르지 않은 속도로, 동물들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이동했다. 다행이었던 점은 동물들도 우리 같은 인간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에토샤국립공원에는 크게 마을 세 곳이 있다. Okakuejo, Halali, Namutoni인데 우리가 머물렀던 곳은 가운데 마을인 Halali이다. 사실 마을이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고 NWR에서 운영하는 숙소, 캠프사이트, 식당, 매점 등이 밀집한 인간의 숙식해결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울타리가 쳐져있어 야생동물이 들어오기 쉽지 않아 비교적 안전하며 우리와 같은 캠프사이트 이용객들을 위한 간단한 전력 공급원이나 샤워장까지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을 근처에는 인공 연못을 만들어두었다. 사람들은 안전하게 높은 지대에서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었고, 동물들은 물을 구할 수 있었다. 특히 우리가 갔던 시기는 건기였는데 인공 연못이 아니고서는 물을 얻을 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비록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긴 하지만 에토샤에 터전을 둔 동물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상생의 방책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정도는 도와줘도 괜찮지 않을까.
에토샤에는 정말 많은 동물이 살고 있었다. 스프링복, 오릭스부터 시작해서 기린, 코뿔소, 코끼리 심지어 사자까지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볼 수 있다는 것이지 제대로 관찰하거나 사진 찍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동물을 생각보다 가까이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얼룩말 정도나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바로 옆에 있을 때 창문을 열면 같이 셀카도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코뿔소 같은 경우는 무리 지어 생활하지 않고 눈에 띄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목이 말라 한밤중에 연못에 왔을 때나 볼 수 있었지 길가에 가만히 서있는 코뿔소는 볼 수 없었다. 혹여나 길가에 동물들이 있더라도 시끄럽게 차가 등장한다면 몇몇 종을 제외하고는 우리와 거리를 둔다.
그리고 동물들도 더위를 탄다. 그래서 그늘 아래에서 쉬거나 물을 마시고 싶어 하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굳이 인간들에게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움직이는 녀석들이 아니다. 그리고 초식동물들의 경우 육식동물의 공격을 피하려면 무리를 지어서 최대한 빨리 이동하는게 상책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가엔 더더욱 나타나지 않는다.
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육식동물이 훨씬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치타, 표범, 하이에나는 보지도 못했고 사자는 등짝과 꼬리만 봤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개체수도 적을테고 사냥을 하려면 몸을 드러내고 다닐 일이 적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 차를 타고 다니는 길은 거의 개활지이기 때문에 몸을 숨기고 싶어 하는 동물들에게는 더없이 좋지 않은 장소일 것이다. 그나마 제대로 본 육식동물은 자칼이었는데, Halali 연못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과 (국립공원 밖) 길가에서 안타깝게도 로드킬 당한 모습이었다.
나미비아 여행지 중 가장 진한 여운이 남은 곳은 Sesriem 지역에서 봤던 나미브 사막과 데드블레이였지만, 가장 흥미진진했던 곳은 에토샤였다. 물론 우리가 거대한 코끼리에게 쫓긴다든가 하는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곳에서 본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모습은 흥미롭고 재밌었다. 상상할 수 없이 무섭고 긴장됐지만 막상 자연 속으로 들어가니 나름의 질서와 리듬이 있었다. 그 안에서 최소한의 룰을 지키며 머무르는 법을 배웠다.
에토샤에서는 다큐멘터리나 책, 또는 동물원에서나 봤던 야생동물들을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셀프 게임 드라이브(스스로 차를 몰고 다니며 하는 사파리)였기에 내가 직접 동물들을 찾아 나선다는 느낌이 강했다. 잠시나마 탐험심 가득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경험이었다. 작은 것 하나에 호기심을 기울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새로움을 느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새로운 자극들에 무뎌지지 않았는가. 주변의 변화에 둔감하고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함이 좋아졌다. 에토샤는 우리의 닫혀가는 눈과 귀를 다시 열어주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