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정전, 벌꿀오소리, 나미비아의 야생동물 보호와 중국인
스와코프문트에서 중간 경유지로 가서 하루 쉬고 에토샤로 향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바쁘지 않은 날이었고 숙소에 들어가서 잠만 자면 되는 일정이었다. 친구도 마음 편하게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 경찰이 나타났다. 한 명은 큰 트럭 옆에 붙어 운전기사와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고 한 명은 도로에서 팔을 위로 들고 알 수 없는 제스처를 취했다.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었고 경찰의 몸짓도 그냥 지나가라는 몸짓으로 보였다.
그렇게 경찰을 지나치고 몇 초 뒤, 뒤에서 경찰차가 쫓아오기 시작했다.
경찰차에 탄 채로 말을 해서 뭐라고 말하는지는 제대로 못 들었지만 눈치껏 경찰차를 따라 차를 돌렸고, 팔을 들고 있던 경찰은 우리에게 엄청 친절한 태도로 웃으며 드라이버 라이센스를 달라고 했다. 그대로 면허증 검사만 하고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은 얼굴에서부터 불쾌감을 보였다. 면허증을 찾는 사이 그는 우리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미비아의 도로는 매우 위험한 곳이다. 너희는 죽어서 돌아갈 수도 있다. 우리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아주 높은 사람이라도 예외는 없다. 우리가 너희 나라에 가면 우리도 너희 규칙을 따를 것이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멈추라는 지시에 불응했으니까 잘못했다는 말이었다. 그 사이 싱글싱글 웃던, 세상 젠틀한 척하던 경찰은 면허증을 돌려주면서 벌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오해했다. 멈추라는 신호인지 몰랐다. 뭐 몇 마디 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영어를 제일 잘하는 친구가 운전을 했던 친구와 밖으로 나가서 경찰과 대화를 하고 조서를 작성했다.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지 벌금을 내야만 했다. 경찰들은 자기네들이 차를 타고 인도해줄 테니 경찰서에 가서 벌금을 내라고 했다. 우리는 경찰차를 따라갔다. 5분이나 갔을까, 작은 마을의 경찰서가 나타났고 우리 차가 멈추자 그 경찰들은 어딘가로 가버렸다. 친구는 벌금과 죄목(?)이 적힌 종이를 들고 경찰서로 들어가서 800 나미비아 달러를 내고 왔다. 운전자 친구와 함께 경찰 조사를 받은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죄목은 '지시불이행'이었다. 죄목이 '무면허운전'인 경우 벌금은 600 나미비아 달러였다고 한다. 우리는 경찰의 정지 지시를 한 번 놓친 죄로 무면허 운전자보다 더 많은 벌금을 낸 셈이다.
스와코프문트에 도착한 날, 숙소 주인 아저씨는 우리에게 신문을 보여주었다. 어제 스와코프문트에서 강도상해사건이 발생했다는 기사였다.(살인사건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stab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던 것만 기억난다.) 강도가 홀로 돌아다니는 여행객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칼로 찔렀다는 기사였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동네라 생각했고 안전한 나라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미비아에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사람은 혼자 다녀서 그랬던 거고 여기 스와코프문트는 치안이 굉장히 좋다고 했다. 이런 사건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 번 쫄았던 것이 다시 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음날 액티비티를 즐기러 업체로 이동했는데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강도가 아니라 정전이었다. 금전 관리 스케줄 상 카드 결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카드 리더기가 안 된다고 했다. 일단 손님이라고 왔으니 쿼드바이크를 먼저 타게 해 줄 것 같았는데 다른 여행객들과 같이 우왕좌왕하며 기다렸다. 다행히도 건전지로 작동하는 간이 단말기가 있어서 어찌어찌 계산을 하고 쿼드바이크도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가게들이었다. 시내로 돌아와서 점심도 먹을 겸 기념품 구경을 하는데 기념품점은 모두 어두컴컴하고 카드 결제가 어렵다고 했다. 우리는 개인 비상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공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개인 비상금도 남아공에서 뭘 사느라 이미 거의 다 소진했다. 정말 '비상금'까지 쓸 수는 없었던 상황. 울며 겨자 먹기로 친구들에게 소액을 빌리고 나미비아은행 ATM기에서 현금을 인출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념품을 사고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이것도 난관이었다.
숙소에서 요리할 여건이 안되니 밖에서 먹기로 했는데 음식점이라고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다.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모든 요리가 튀김은 불가능하고 구이만 가능하다고 했다. 당연히 샐러드도 시킬 수 있었다. 그 여파로 친구가 주문한 것은 구운 오징어와 구운 감자였다. 한국에서는 저런 스타일로 오징어를 요리해먹지 않는다. 올리브유 두르고 허브 가루를 살짝 뿌린 것 같았는데 아주 밍밍한 맛이었다. 저 오징어 요리를 다 먹어갈 때 즈음, 다시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때 인터넷 상에 널리 알려진 동물이 있다. 강인하고 용맹한 모습. 맹독을 가진 독사를 물어뜯고 사자와 맞서는 모습. 바로 벌꿀오소리이다.
더 강렬한 짤도 충분히 많이 있으니 궁금하다면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하여튼 이 벌꿀오소리를 아프리카에서 보게 될 거라고 기대했던 것은 아닌데 보게 되었다. 사나이 중의 사나이, 진정한 강자, 파이터 벌꿀오소리를 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에토샤 내의 캠핑장에서였다. 벌꿀오소리는 캠핑장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강인한 벌꿀오소리는 우리 앞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플래시를 비추며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고 구경하는데도 꿈쩍 않고 본인의 할 일을 했다. 쓰레기통을 들락날락 거리며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뱀을 사냥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뱀을 잡는 일보다 쉬운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친구 하나는 벌꿀오소리를 농락한답시고 쓰레기통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문을 닫고 도망쳤다. 벌꿀오소리는 화들짝 놀라 밖으로 나오더니 다시 쓰레기통을 뒤졌다.
중국, 또는 중국인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려는 취지는 아니지만 솔직히 한국에는 중국에 대한 편견이 있다. 중국은 인접국에 해를 끼치는 나라이며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중국인도 욕심 많고 시끄러우며 막 나간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 이야기는 중국이라기보다는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렌트카 업체로 향하던 길에 검문소를 지난 일이 있다. 택시기사가 지나치면서 인사만 하고 지나가길래 여기가 뭐하는 곳이냐고 물어봤더니 대뜸 '차이나'가 먼저 나왔다. 중국인들이 밀렵에 관여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나미비아에 여행을 온 중국인들이 밀거래되는 야생동물의 뼈나 뿔, 상아 같은 것을 사간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검문소에서는 밀반출되는 물품이 없는지 검사를 하는 것이었고 자기는 중국이 싫다고 했다. 우리도 미세먼지와 황사 이야기를 곁들이며 중국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미비아에서는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활동이 활발해 보였다. 마트에서 사는 제품들이나 그 광고물에는 야생동물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왔다. 에토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도 야생동물 밀렵을 적발하면 포상금을 준다는 광고문을 볼 수 있었다. 현실에서의 문제의식이 이미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보였다.
위 사진에 나온 코뿔소, 천산갑 모두 대표적으로 중국에서 많이 거래되는 동물이다. 코뿔소 뿔이나 죽은 천산갑을 대량으로 유통하다가 적발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여러 차례 접했다. 멸종위기종 보호에 대한 세계적인 입장이 한 데 모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독 중국에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나미비아인의 입에서 중국이라는 이름이 나왔을까 싶다.
사실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아끼는 것은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도의적으로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생물을 자원으로 보는 관점에서도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적정 개체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는 영역이고 허가되지 않은 수렵과 무분별한 수렵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중국인을 콕 집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누구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욕심을 내려놓고 너와 나를 두루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에토샤 국립공원에 들어가기 전 날, 오카한자라는 도시의 Ombo rest camp라는 숙소에서 하루 묵어갔다. 숙소 근처에는 타조들이 참 많았는데 유난히 검은 깃털을 자랑하는 타조가 한 마리 있었다. 울타리 근처를 서성거리며 우리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털썩 주저않아 날개를 벌리고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은근한 리듬감이 느껴지는 춤이었다. 타조를 마주보고 몸을 같이 흔들고 싶었다. 맥주 한 병 들고 산책을 하다 맥주병을 내려놓고 같이 팔을 휘저으며 춤을 나눴다. 어색하지가 않았다. 그는 타조였고 나는 타조가 아니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마냥 자유롭고 즐거웠다. 서로에게 행복을 준 이종 간의 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