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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Mar 16. 2020

이베리아 반도 국가의 정체성

18.1.23. ~ 18.2.8. 스페인-포르투갈 여행

이베리아 반도의 두 국가를 여행했다. 남들도 하듯이 겉핥기 식의 여행이었다. 특별히 컨셉은 없었다. 그저 여행이 해보고 싶었다. 남들 다하는건 아니지만, 남들 다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대학생의 유럽여행. 취직도 됐고 졸업만 남았겠다 대학생 신분일 때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또 남들 다 하는 것처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평범하게 남들 가듯이 수많은 국가를 한두개 도시만 돌면서 빠르게 훑고 지나가면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베리아반도에만 머무르며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에 깊게 빠져 집중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당시 내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다. 가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특이한 이유가 하나 있다.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에서 그 시대의 낭만에 푹 젖었던 것이 그 이유다. 제국주의라든가 식민지배라든가 생각 안 해본 중학생 시절이었다. 바다를 헤쳐나가는 항해자의 기개와 제국의 강성함이 만드는 낭만에 반했다. 미지의 시공간은 십대의 나를 환상에 적셨고, 이십대의 나를 이베리아 반도로 향하게 했다.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두번째로 들른 도시, 세비야.

그 도시에서 내가 환상 속에 그리던 스페인을 보았다.

옛 제국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은 내 설렘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유라시아 동쪽 끝에 사는 내가, 왜 유라시아 서쪽 끝 나라의 영화로운 과거를 보고 싶어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세비야에서 내가 보고 싶어하던 것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코르도바 즈음에서 부터였던 것 같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광경들을 보게 되었던 것은.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모스크의 몸에 성당의 얼굴을 한 모습을 보였다.

한때는 무어인의 땅이었고 이슬람 세계의 요지였다. 내가 보고 싶어하던 스페인은 없었다.



그라나다의 시그니처 알함브라도 잘 모르고 갔지만 들어가보니 무어인의 색채가 강했다.

내부는 아라베스크 양식으로 가득차 있었고, 황토색과 흰색의 도시는 공간감각을 무디게 했다.

내가 서있는 곳은 어디일까.



스페인을 떠나 또다른 해양제국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닿았다.

늦은 오후 햇살 탓일까. 쌀쌀한 바닷바람 탓일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도시였다.



위용 넘치는 발견기념비와 코메르시우 광장의 동상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허황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광장 한쪽에는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소속국들의 국기가 한 데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과거 식민모국이었던 나라의 수도에서 식민국들의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주는 위화감은 강렬했다.

그 뒤로 가난한 노인이 지나가고, 할 일 없는 젊은이가 지나갔다.

피지배의 상들은 부조화스러운 장신구처럼 나풀거렸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노라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호카곶이었다. 대양을 향한 그 마음이 궁금했다.

결국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곳, 세상의 끝으로 불리는 호카곶에 섰다.

그곳에 내 환상이 실존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환상은 이미 무너졌다.

내가  호카곶은 허무하고 황량했다. 대양을 향한 가슴 벅찬 마음은 없었다.





이베리아의 정체성은 기독교와 이슬람에 공존한다.

이베리아의 정체성은 상승과 하락에 공존한다.

이베리아의 정체성은 지배와 피지배에 공존한다.



뜨겁고 건조한 마을의 좌측과 눈덮인 산맥의 우측, 이베리아 반도의 두 국가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하나로서 존재하지 않는 다면적인 정체성, 그게 매력이지않을까 싶다.

그 매력에 이베리아 반도 여행이 심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느끼고 싶었던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고 뜻밖의 감상을 주는 여행의 변수와 함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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