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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Mar 29. 2020

스물 하고도 아홉, 동해안 7번국도

첫번째 이야기 _ 세피아

스물 하고도 아홉의 11. 이십대를 정리하고 미지의 삼십대를 기다리던 . 업무적으로도 너무 바쁜 9, 10월을 보낸 뒤였다. 나에겐 쉼이 필요했고 이십대를 마무리하며 어딘가 떠나고 싶었다. 아니면 별다른 이유없이 그저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떠나기로 마음 먹은 뒤 어디로 가면 좋을지 떠올려봤다. 가장 먼저 떠오르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곳이 '동해안 7번국도'였다. 그곳은 나에게 '낭만' 또는 '청춘' 따위의 단어를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푸른 하늘과 바다가 펼쳐진 탁트인 해변을 옆에 끼고 바닷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낭만을 품은 청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영화 '족구왕' 마지막 장면에서 만섭은 강민에게 얻은 스포츠카를 끌고 해안도로를 달린다. 지금은 물론  장면의 도로가 7번국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나에게 7번국도의 이미지는 바로  장면이었다. 달리고 싶을  달리고, 멈추고 싶을  멈출  있는 .  푸른 바다와 거친 바람이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곳. 그곳이 7번국도인듯 했고, 나는 그곳에서 살아있을  있을 것만 같았다.




본격적으로 동해안 7번국도에 올라타기 , 여행  날은 어머니와 함께 했다. 효자는  되기에 효자인  하는 정도로만 다녔다. 어머니는 오대산 월정사와 선재길을 가고 싶어하셨지만, 나는 양양 낙산사가 보고 싶었다. 결국 선재길은 제끼고 월정사만 둘러봤다.  이후로 "선재길 가고 싶다는데 데려가 주지도 않았으면서"라는 타박을 듣곤 한다. 어쨌든 그렇게 속초까지 모시고  저녁을 함께 하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설악산 토왕성폭포까지 걷고 돌아와 게스트하우스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친구 K 태우러 고성으로 향했다. 영랑호를 지나 공현진항을 지나 북으로 차를 달려 간성버스터미널에서 K 만났고, 본격적으로 7번국도에 올랐다.


고성에서 먼저 찾은 곳은 거진항이다. 한때 명태잡이로 번성했을 항구는 한적했다. 배가 들어올 시간이 아니었던게 한 몫 했을테고, 시설이 개보수 중이었던 것도 한 몫 했겠지만, 항구는 날씨처럼 흐렸다. 조용한 내항 옆 어판장 건물 콘크리트는 낡고 때탔다. 세월의 색이 입혀진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걷다보니 비교적 최근에 지은 듯한 어판장 건물이 나타났다. 지나가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K가 전부인 것이 무색하게도 수산물이 즐비했다. 한 할머니는 처음보는 무늬오징어를 만원 어치만 썰어줄테니 먹고 가라고 권하였고, 수조와 빨간 대야에는 각종 생선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바다향이 선명했다. 그러나 어판장을 나서고, 나는 다시 쓸쓸한 바닷가 마을로 돌아왔다.


거진항을 떠나 화진포로 향했다. 비소식이 있던 날이었으나 비는 거의 오지 않았고, 해가 어설프게 구름 사이로 드러났다. 거진항을 떠나 화진포에 다다를 무렵 하늘은 금빛을 띠었고, 나른한 오후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들이치듯 화진포의 물결은 반짝였다. 오가는 차는 드물었고 갈대들이 나부꼈다. 한때 남북 정상들이 아꼈던 화진포도 이제는 노쇠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관광지 특유의 느낌이 있었다. 덕분에 사람 한 명 없는 해변을 걸었고 시끄럽지도 않았지만 쓸쓸함에 괜히 마음이 적적했다.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2013년 1월 초, 군대에서 받은 첫 휴가 때 중학교 친구들과 동해 묵호항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한밤중에 도착해서 묵호항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그저 항구 근처에서 숭어회를 떠서 숙소로 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술을 한두잔 기울이다 일찍 잠이 들었고, 다음날이라고 묵호 인근을 딱히 둘러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묵호에 다시 한 번 가고 싶었다. 이미 희미해져버린 조금 더 어린 이십대의 추억이 묵호에 있을지도 몰랐다. 고성 청간정까지 둘러보고 속초와 양양, 강릉을 그대로 지나쳐 동해로 직행했다. 그렇게 묵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기 직전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어두운 묵호항만 기억에 남기게 되었다.


묵호는 오래 머문다거나 특별히 무엇을 보려고 들린 곳은 아니었고 그저 내 추억에 이끌려 간 것 뿐이다. 바닷가에 왔으니 K와 물회를 먹기로 했다. 굳이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은 왜인지 문이 닫혀있었고 길을 걷다. '부담없는횟집'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식당을 발견했다. 정처를 잃었고 날은 춥지만 물회는 먹고 싶었던 우리는 일단 들어가보기로 했다. 뒤의 이야기에 내가 서술할지는 모르겠지만 부담없다던 그곳을 포함하여 여행 중 먹은 회는 정말 만족도가 낮았다. K는 다행히도 부담없다던 그곳만 만족도가 낮았던 것 같다. 나의 묵호항에는 이제 2013년이 자리할 구석이 줄었다.




첫 날 내가 방문한 곳들은 나의 기억, 그리고 아마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세피아빛이다. 고성의 거진항, 화진포, 그리고 묵호는 우리 역사에서 희미해져가듯 우리 삶에서도 희미해지고 있다. '한때'의 추억을 간직하고 그 추억으로 먹고 사는 곳들이다. 거진항에는 만선의 희열로 연이어 웃던 어민들의 추억이, 화진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관광지의 추억이 존재한다. 묵호는 개인적으로는 첫 휴가의 추억이 남은 곳이었고, 동네 그 자체로서는 사실 거진항과 비슷한 영화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나는 흑백사진은 좋아하면서도 세피아사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쓸쓸함이라면 흑백으로도 충분히 담을  있으며 오히려 흑백에 비해 감정과 주제를 절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쓸쓸함, 외로움, 고독함, 슬픔 따위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느낌이었을까. 그래서 세피아사진을  찍지 않았다. 하지만 7번국도 위에서 나는 스물 하고도 아홉이었다. 불혹까지  10 밖에 남지 않았는데, 오히려 쓸쓸함에  취약해진 것만 같았다. 이제는 나란 존재도 세상에서 희미해지는 것만 같아 괜히 쓸쓸해져서 그랬을까. 세피아빛 감도는 공간에 내가 물든 것인지, 내가  공간을 세피아빛으로 물들인 것인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고성도 묵호도 나도 그저 그날만큼은 쓸쓸했다는 사실만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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