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은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겔 May 17. 2020

스물 하고도 아홉, 동해안 7번국도

두번째 이야기 _ 블루

'일정에 쫓기며 꼭 무언가를 봐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여행은 별로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흐르며 여유로운 여행을 바란다.' 나에게 어떤 여행 스타일을 추구하는지 물어본다면 보통 이와 같이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 여행지의 깊은 밤, 술 한 잔 기울이며 사뭇 진지하게 이런 답변을 한 날에도 다음날 아침에 빨리 움직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여행을 하며 나는 생각보다 쉽게 얽매이고 아쉬워했다. 내 스타일? 보통의 스타일이란 그저 이상적인 것이니까.


첫째날 밤에도 나는 K에게 일찍 출발하자고 제안했다. 둘째 날은 바다에 더 가까이 난 해안도로가 많은 일정이어서 욕심이 났고, 무엇보다 아침식사로 곰치국을 먹어야 했다. 나의 동해안 7번국도에는 곰치국이 당연스레 놓여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여행에 곰치국을 먹지 못한다면 7번국도를 다녀오지 않은 것과 사실상 같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이른 아침 눈을 뜨니 설렜다. 추리닝 바지에 후리스를 대충 걸쳐 입고 묵호를 떠났다. 묵호를 벗어나려는 길에 늘어선 출근 차량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그 행렬에 섞여 적당한 선으로 가라앉은 마음으로 길을 가다 보니 금세 삼척이었고, 족구왕에서 나온듯한 해안도로였다.(최근에 다시 찾아보니 같은 도로는 아닌 것 같으나 동일성이 여기서 꼭 중요한 것은 아니니 무관하다.) 여하튼 삼척은 그때 포근함이라곤 전혀 없는 찬 날씨에 바다마저 시퍼런 빛이었다. 가늠할 수 없이 깊은 빛깔 앞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향해 말 그대로 뛰쳐나갔다. 바다에 다가설 때의 선명한 한기가 지금도 피부에 서려있다.


한기를 가득 품은 삼척의 바다 앞에 서있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바다가 품은 한기에 온몸이 차가워져서였을까, 온몸이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살아있음에도 살아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데 삼척의 한 바닷가에서 나는 열렬히 살아있었다. 나의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곰치국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바다를 보고 얼마 있지 않아 김치로 국물을 낸 뜨끈하고 시원한 곰치국을 한 사발 마셨다. 사실은 바다의 차가운 한기에 살아있음을 느낀 것이 아니라 곰치국의 따뜻함에 살아있음을 느낀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곰치국의 온기에, 나는 답답한 껍데기를 벗고 살아있음을 피부로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근원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푸른 삼척 바다 탓인지 뻘건 곰치국 탓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 시공간 속에 내가 푹 젖어있었기에 살아있음을 느꼈던 것이며, 그때의 감상을 지금도, 2019년 11월 14일 삼척에서의 순간을 아직도 온전히 느끼며 그려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지금은 지나갔지만, 언젠가 온전했던 현재를 안고 산다는 것은 참 감사하다. 김영하 작가님의 말처럼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기는 하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당장 지난주 목요일에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조차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삼척에서의 순간은 그 누구에게라도 제대로 묘사할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정작 현재를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현재로 채울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K가 추천한 장호항에 멈췄다. K는 '한국의 나폴리'라는 표현을 썼는데 나폴리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리 공감되지 않았다. K도 나폴리에 가본 적이 없다고 알고 있다만 흔히들 쓰는 표현이니 그러려니 했다. 커피나 한 잔하고 곧 떠날 요량이었는데 마땅한 카페가 없어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올라갔다. 운이 좋게도 카페가 하나 있었고 전망이 꽤 괜찮았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다시 전망을 즐기던 그날의 날씨가 떠오른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 눈이 부시게 선명한 하늘,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차갑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청량한 바람. 누구라도 그 장호항에 있었다면 싫은 기억으로 남았을리 없을 것이다.


7번국도의 또 다른 이름은 아시안하이웨이 6호선이다. 또 다른 이름이라기보다는 아시안하이웨이 6호선의 일부라고 표현하는게 맞겠지만 아무튼, 삼척을 떠나 경북 울진으로 넘어가면서 그 이름도 거창한 '아시안하이웨이'에 걸맞은 감상을 느꼈다. 곧게 뻗은듯하면서도 지형을 따라 살짝 굽이치는 도로는 태양이 내리쬐어 밝게 빛나고 있었고, 왼편 저 멀리로는 아련하게 물든 나무들과 바다가 보였다. 바람은 쌀쌀하고 햇볕은 따뜻했고 K와 나는 추억의 노래들을 들으며 또 어딘가로 향했다. 일상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순간, 그 순간은 반짝하고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단지 동해안 어딘가를 달리고 있는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끝없이 빛나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정처없이 달리다 망양정(望洋亭)에 닿았다. 큰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 여기서 '망'이란 글자는 또한 '그리다, 바라다'의 뜻을 지닌다. 망양정을 짓고 거기에 올랐던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바다를 그리고 염원했을 것이다. 탁 트인 시원한 바다 앞에 서기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 즈음에 망양정에 섰을 것이다. 고요하고 넓은 바다의 마음을 닮기를 바랐을 것이다. 바다를 그렸던 나도 망양정이란 이름에 끌렸다. 고성에서도 하염없이 바다를 보고 싶어 청간정에 들렀는데 이번엔 망양정이라니, 이름부터 애절한 망양정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정표에서 '망양정'이라는 글자를 본 찰나의 순간 스친 생각이었다. 그 찰나에 붙잡혀 나는 기어코 망양정에 멈췄다. 기왕 차를 세웠으니 망양정에 오르고 싶었다만 내 바람과 달리 망양정은 보수 공사 중이었다. 눈 앞엔 그저 모래사장이 환했다. 환한 빛을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으니 문득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며 알 수 없는 우울을 맞이했다.


우울의 이유를 어느 정도 알아차렸지만 수면 위로 꺼내고 싶지 않아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다시 해안선을 끼고 울진을 달리다 영덕으로 접어들었다. 해안선을 계속 따라 달리다 보니 지대가 어느 정도 높아졌고, 풍력발전소 단지를 낀 적갈색 산과 진청색 바다의 경계가 이어졌다. 잠시 영덕에 머물다 보니 어느새 살짝 해가 떨어진 때였다. 곧이어 어둠이 깔릴 것이 자명했기에 포항으로 서둘러 가기로 했다. 예상치 않은 포항행 퇴근 행렬에 합류해 빠르지 않게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K는 포항에 다 와간다며 최백호의 영일만친구를 틀었다. 나와 K에게는 '바닷가에서 오두막 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친구'가 없었지만, 이 노래는 다음날 영일만에 다다를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하여 재생됐다.




포항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다. 시간이 그렇게 늦지는 않았다 싶었는데 도시는 이미 한밤중과 다름없이 어두웠다. 짐을 풀고 남들 다 가는 죽도시장으로 가서 남들 다 먹는 그런 회를 먹었다. 괜히 포항까지 왔는데 뭐라도 특별한 것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독도새우를 추가했다. 지역 소주에 회 한 점, 그리고 독도새우까지 비싸면서도 싼 그 맛을 삼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과메기가 떠올랐다. 초등학생 때였나 택배로 올라온 과메기를 받아 외가 식구들과 우리 가족이 둘러앉아 나누어 먹던 기억이 있다. 초장 살짝 찍어 미역에 다시마에 배추에 싸 먹었던 비릿하면서도 깊은 고소함이 있는 맛. 그 맛이 떠올라 집에 과메기를 부쳤다. 과메기를 부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캔을 더 샀다. K와 축구대표팀의 경기를 보며 맥주를 홀짝였는데, 꽤나 지루한 경기 끝에 피로를 떨칠 수가 없었다. 피로감에 괜히 우울해져 잠을 자고 싶지 않다가도 잠을 자고 싶어졌다.




한여름 여우비가 차라리 납득하기 쉬울 것만 같은 갑작스러운 우울의 이유를 나는 알았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꿈을 꾸었음에도, 이뤄질 수 없는 꿈임을 알기에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깨었다는 어느 고사 속 한 아이의 일화처럼, 찬란하고 생생한 나의 아름다움은 유한하며 일시적임을 나는 잘 알았다. 바다를 너무 오래 바라보다가 내 속을 파도가 휘젓고 나가서인지, 나의 여행 일정이 중간 지점을 지나자 직감적으로 끝이 보임을 두려워한 것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울컥할 만큼 감격스러운 그 순간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 내 우울을 끌어냈던 모양이다.

푸른색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며 내 품에 안은 끝에, 내 감정의 색은 끝내 파랗게 물들어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물 하고도 아홉, 동해안 7번국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