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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Jun 25. 2020

외국 같다

'우와, 외국 같다.'

'야 진짜 무슨 외국에 온 거 같아.


사람들은 흔히 어떤 풍경이나 경치가 놀랍도록 아름답거나 멋있을 때 위와 같은 표현을 쓰곤 한다. 때로는 유사한 표현으로 '한국의 ㅇㅇㅇ'도 일상생활에서, 또는 홍보 목적으로 각종 매체에서 사용되곤 한다. 감천동을 한국의 산토리니, 한국의 마추픽추로, 그리고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로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풍경들은 한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외국 같기는  것일까. 의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부인할  없게도 정말 '외국' 같은 공간이 있기는 하다는  안다. 특정 국가에서 연상되는 일반적인 이미지를 차용하여 테마파크를 만들거나 인테리어를 꾸민 경우에는, 설사  국가에   적이 없다 해도, 정말  나라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보통 '외국 같다'는 말은 상황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 감탄스러운 경관이 눈 앞에 펼쳐졌을 때, 우리는 반사적으로 사용된다. 표면적으로 가지는 뜻과는 실질적으로 다른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크게 이상한 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인식 속에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나에게 '외국 같다'는 말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표현을 위한 어휘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못한데, 대개는 멋있다거나 아름답다, 조금 더 노력하면 예술이다 또는 그림 같다 정도의 표현에 국한된다. '외국 같다'도 연장선상에 있다. 외국을 가봤든 아니든, 그리고 실제 그 풍경과 얼마나 유사성이 있는지와 큰 관계없이 '큰돈과 오랜 수고를 들여서까지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미로서 기능한다. 모두가 대강 그런 뜻임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환상이 우리 인식의 기저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보통 외국에 대해서 항상 그럴듯한 이미지로 만나왔다. 최고의 아름다움만이 보전된 그 순간을, 멀리 어느 곳의 우리는 만나게 됐고,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긍정성을 연상시키는 데로 이어졌다.  또 이는 어찌 보면 사대주의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가깝다고도 생각한다. 꽤 많은 사람이 공감해주고 인정해줄 수 있는 보증된 권위를 긍정적 이미지의 '외국'에서 빌려와 '외국 같다'는 관용적 표현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말에 비춰봤을 때, '외국 같다'라는 표현이 잘못됐고는 말하지 못해도, 우리 사고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외국의 권위에 기댄 찬사는, 외국으로부터의 인정 또는 유사 외국이라는 권위의 부여를 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 같다'는 관용적 표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반복적으로 사용할 때, 우리는 지속적으로 외국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며, 은연중에 그 찬사의 대상을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놓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쪽에 더 높거나 낮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일방의 우위에 대한 강한 전제를 둘 때와 두지 않을 때, 개인의 선호와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대와 국수의 줄타기에서 그래도 더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인식들을 인지하고 깨 보려는 노력이라도 하는데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뭐 꼭, 이와 같은 케이스에만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외국 같다'는 표현은 워낙 널리 쓰이기 때문에, 나도 때로는 멋진 경관을 마주했을 때 입술 뒷면까지 그 말이 들러붙곤 하여 그때마다 다시 삼켜 넣으려고 노력하곤 한다. 그리고 다시 내 눈 앞에선 경관을 한 번쯤 더 훑으며 무언가의 권위에 기대지 않은 찬사를 해보려 노력한다. 때론 멋없이 '멋있다' 같은 말 밖에 하지 못하여 맥이 풀리긴 한다. 그래도, 비록 조금 맥이 풀리는 날이 조금 더 생기더라도, 나에게 더 넓고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면 '외국 같다'는 말 한 번은 삼키는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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