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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Mar 24. 2020

코로나와 자가격리, 내 이야기는 아닌 줄 알았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그날은 조금 바쁠 예정이었던 날임에도 평소와 비슷한 속도로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분주하게 씻고 나와 머리를 털면서 핸드폰을 봤다. 평소와 달리 이른 시간임에도 문자와 카톡이 상당히 많았다. 그게 그저 우연인줄로만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멍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


회사에서 온 문자였다.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여 건물을 방역해야하니 오후에 출근하란다. 그렇구나. 그런데 나 오늘 바쁠텐데, 오후에 출근해서 다 처리할 수 있으려나. 어찌되었든 강제로 여유가 생겼으니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내려 향을 맡고 맛을 느끼고 바깥을 보며 나는 수 통의 문자를 더 받았다.  그렇게  카프카의 변신이 스쳤다. 그레고르는 자신이 벌레가 된 것을 알면서도 오늘 할 일을 걱정했다. 벌레가 된 지경까지는 아니었지만, 사회에 매인 몸으로서 나도 할 일이 걱정됐다. 코로나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 지침은 출근하지말고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지침은 급변하는 사태를 대변했다. 당장 내일 출근도 유보되었고, 보건소는 밀접접촉자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나를 바쁘게 했던 일은 취소되었다. 분명히 출근해서 사무실에 있을 시간인데 집에서 멍하니 있으려니 어색했다. 사무실 전화를 안 받으니 핸드폰이 울렸다. 사정을 설명하면 예외없이 응원의 메세지를 전해주셨다. 그리고 보건소의 역학조사 결과 나를 포함한 상당수가 검사를 받아야 했다.




다음날 오전,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 문자가 왔다. 나는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아닐거라고 확신했다. 돌이켜봐도 여지껏 내가 아는 확진자분들과 그렇게 가까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고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주말에 고향 집에 다녀오고 친구들을 만났지만 거기서 설마. 설마 그럴 수는 없었다. 어제만해도 나는 코로나 시대에 고 있지만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되었다. 나의 안전하지 못함을 증거하는 사실은 내가 무증상자라는 점을 제외하고널려있었지만, 나의 안전함을 뒷받침할 근거는 내가 무증상자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없었다. 코로나 확진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그저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젊고 아프지 않고 설령 걸리더라도 이겨낼  있겠지만, 간절히 아니길 바랐다.


음성으로 가는 길은 멀었고, 다시 다음날 오전이 왔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리고 다시 긴 시간이 찾아왔다. 보건소에서는 공식적인 통보문서가 오기 전까지 자가격리를 시행하라고 했다. 자가격리 문자가 온 것은 음성 판정을 받은지 3일 뒤였다.




코로나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먹어야 했기에 일을 해야했다. 일을 했기에 사회는 움직였고, 사회가 움직였기에 우리 회사도 움직였다. 나는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무료하게 볕이 드는 책상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멍하니 있다가도 업무 전화와 업무 카톡이 찾아왔고, 순간 사무실의 이미지가 펼쳐졌지만, 다시 고개를 들면 무료한 볕이 들고 있었다. 집에 오랜 시간 갇혀있어서 답답하고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래도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하면 거짓이다. 나름 잘 쉬기도 했다.


처음 며칠은 업무가 정상화되지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쉴 수 밖에 없었다. 보고 싶었던 드라마, 영화를 쉬지않고 봤다. 유배지에서 연구와 집필에 전념한 다산 선생처럼 나도 글을 읽고 글을 써야겠구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다짐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영상들에 피로해지기 시작하고서야 글을 조금 읽고 쓰기 시작했다. 출퇴근 하던 시기의 저녁과는 사뭇 다른 저녁으로, 활동 에너지가 조금은 남는 저녁이었다. 저녁에도 마냥 늘어져있지 않을 수 있었다. 천장보며 핸드폰이나 만지작 거리다가 잠드는 밤이 아니었다.

아침은 쫓기듯이 오고 밤도 쫓기듯이 가는 직장인의 삶은 달라졌다.

아침은 여유롭게 왔고 밤은 여유롭게 갔다. 일주일 즈음은.





일주일 즈음 지나서였나 열흘 즈음이 되어서였나 모르겠는데 점차 밤이 외로웠다. 일을 했지만 일한 것 같지도 않았고, 성실히 논 기분도 아니었다.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가 끝나고, 잔잔히 흘러나오던 라디오를 끄고, 거실 불이 꺼지고 방으로 향할 때면, 발걸음이 무거웠다. 보고싶은 사람들과 전화를 해도 되고,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내가 자가격리 중이라는 사실을 깊게 자각하게 되었다. 나의 외로움을 내가 증명하는 꼴이었고, 그럴때면 외로웠다.


다시 아침, 무료한 볕이 들기 시작하면 조금은 괜찮아졌으나 해는 금세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가 지면, 다시 아침을 바랐다.




이제 나는 자가격리 해제를 앞두고 있다. 썩 안락했으나 조금은 외로웠던 자가격리 기간을 끝내고, 이제는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운이 좋아서 아프지 않고 굶지 않고 크게 심심해하지 않고 자가격리 기간을 마친다. 병마로 고생하고 있을, 외로움으로 고생하고 있을, 또는 무언가 다른 이유로 고생하고 있을 자가격리자들이 웃으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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