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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Aug 20. 2020

프로메테우스의 형장

[사진과 단상] 조지아 카즈베기


[사진과 단상] 프로메테우스가 간을 쪼일만한 곳의 형장


터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인접한 한두개 국가 정도는 더 방문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나라는 조지아였다. 구소련의 흔적이 남은 동구권 국가에 지리적으로는 중동에 가깝지만 유럽으로 분류되는 신기한 나라. 게다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하던 즈음 러시아와의 전쟁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나는 이 미지의 세계가 궁금했다. 이렇게 조지아를 선택하고 가볼만한 곳을 찾아보니 캅카스 산맥이라는 신화 속 공간이 있었다. 캅카스 산맥은 산을 좋아하는 나의 마음을 흔들었고, 나는 프로메테우스를 만나기 위해 조지아를 택했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다 제우스에게 들키는 바람에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게 된 안타까운 프로메테우스. 그 자가 오늘도 형벌을 받고 있는 형장이 바로 캅카스에 있다. 어렸을 적에 동화책에 실린 삽화를 보면 어느 황량한 절벽에 프로메테우스가 매달려 간을 쪼이며 고통받고 있었다. 유년시절 글을 지배해버린 그림이 가한 상상의 거세 속에 그 이미지를 제외한 이미지는 그려보지 못했는데 사진 속의 모습은 색달랐다. 내가 방문한 때는 심지어 3월. 해발 5000m가 넘는 산들에 둘러싸인 마을은 여전히 한겨울이었고 프로메테우스는 차가운 눈을 맞고 있었다.


아, 제우스는 냉혹하구나. 이렇게 외지고 험준한 산맥 속에, 그것도 겨울이 길어 눈이 잘 녹지 않는 곳에 프로메테우스를 묶어두었다. 스테판츠민다의 마을 군락이 내려다보이는, 카즈베기를 등진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 앞에 서니 이곳을 형장으로 삼은 제우스의 마음은 모질게만 느껴졌다. 나는 낯선 추위와 바람, 쌓인 눈을 거슬러 산에 올랐고 눈 앞의 거산을 보고 있자니 두려울 뿐이었는데 프로메테우스는 어떤 마음일까. 그는 인간에게 불을 전하고 나서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또한 인간 역시 무심하다. 겨울이면 맹추위 속에 산사태의 위험이 도사리는 캅카스 산자락에 살면서도, 그 생활을 가능하게 해 준 불과 이를 선사한 프로메테우스를 위한 기도문 하나 읊지 않으면서 교회를 프로메테우스의 형장 바로 앞에 짓다니. 생존을 뛰어넘는 신념이 있어서인지, 혹은 수천 수만년의 시간이 흘러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잊은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이, 차가운 바람을 타고 내 살결에 닿아 더 오랜 시간은 서있지 못하겠다 싶었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에서 저녁을 먹었다. 도수가 50 즈음되는 차차로 몸을 달구고, 슬슬 적응되어가는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에 안락이  해질수록 프로메테우스에게 형벌이  가중되는가 보다. 간을 쪼이는 고통도 모자라, 험준한 산맥  험할  있도록 눈을 내리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늦은 밤이  때까지도 눈은 전혀 그치지 않았고, 마을은 온통 눈으로 덮여  다음날에 비로소 제대로 움직일  있었다. 날이 맑아 프로메테우스의 형장이 있는 봉우리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고, 형장은 폭설에 덮였는지 찾아볼  없었다. 마을을  바퀴 돌고 나니 어느새 트빌리시로 떠날 시간. 프로메테우스를 바라보며,  며칠이라도,  속의 추위에 떨지언정 독수리의 쪼임을 피할  있기를 기도했다. 나는 그렇게 카즈베기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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