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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Aug 21. 2020

상처는 오래 남아 역사를 지탱하고

[사진과 단상] 홍콩 라마섬과 제주 송악산

[홍콩 라마섬] 상처는 오래 남아 역사를 지탱하고


이제는 가고 싶어도 예전과 다른 정취를 보일 것만 같아 쉽게 가고 싶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 홍콩. 작년 연수원에 입교하기 전, 인생 마지막 남은 휴가를 불사르고 있을 무렵에 혼자 다녀온 여행지였다. 야경과 먹거리, 붐비는 국제 금융 허브 도시와 아날로그적인 뒷골목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던 그곳에서도 나는 걷기를 원했다.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홍콩의 트래킹 코스들이 꽤나 잘 개발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쉬엄쉬엄 걸으면서 바다 냄새도 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그중 하나, 라마섬을 코스에 넣었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은 코스였고, 길도 험하지 않아 체력과 시간 여유만 있다면 가족들과 함께 거닐어도 좋을만한 섬이었다. 아기자기한 어항과 한적한 해변을 걷다 작은 마을도 마주칠 수 있다. 그런데 이 섬에는 무언가 인위적이고 수상한 굴이 있다.


[제주 송악산] 상처는 오래 남아 역사를 지탱하고


홍콩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제주도에 갔다. 연수원 동기들과 만든 등산 모임에서 제주도 여행을 추진했는데, 나름 등산 모임인지라 1일 1산을 실천했다. 첫날에는 오름, 둘째날엔 한라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악산 트래킹을 했다. 사실 송악산은 높거나 거대한 산은 아니다. 해안을 따라 난 조금 너른 언덕이라고 보는게 더 적절할 수도 있는 그런 공간이다. 멀리 보이는 산방산과 해안선을 따라 걸었는데 우리가 딛고 선 해안 절벽 아래에도 이상한 굴이 있었다. 그리고 산방산을 걷다 보니 다시 비슷한 류의 굴을 만날 수 있었다. 무릇 굴이란 것의 성질이 보편적으로 그러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어두운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흡사 홍콩 라마섬에서 본 굴과 닮았다.


 

(왼쪽) 홍콩 라마섬의 굴 (오른쪽) 제주도 송악산의 굴


1900년대 초중반, 일제는 다른 나라들을 억지 주장과 무력으로 굴복시키고 강압적인 합병을 주도했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일제의 희생양이었고, 나라 곳곳엔 일본의 군경이 자리했다. 홍콩은 기존에도 영국령이긴 했으나 일제에 한 번 더 빼앗겼다. 홍콩의 토착민들은 잃어버린 자신들의 땅을 다시 한번 빼앗긴 셈이다. 일제는 우리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법적으로 국가를 점거한 뒤 곳곳에 본인들의 필요에 따라 흔적을 남겼다. 민족의 정신적 터전에 신궁을 짓기도 했고, 정체성을 희미하게 만들고자 공간을 본인들 입맛에 맞게 새로 명명하거나 재구성했다. 끔찍한 일 중 하나는 세계 곳곳을 침탈하겠다는 헛된 욕망에 휩싸여 식민지배를 가한 국가들을 전쟁터로 만든 일이다. 직접 전쟁을 벌이거나, 군수기지로 사용했다.


홍콩 라마섬과 제주도 송악산에서 발견된 굴들은 전쟁 야욕으로 일제가 만든 흔적이다. 바닷가에 굴을 파서 일제는 전투에 사용할 배, 포 등 전투물자를 숨기고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다 일제가 패망하고 적국의 군사와 물자들은 떠났지만, 그 자리에 아직 상흔이 남았다. 아름다운 경관에 뜬금없이 뚫려있는 굴에는 여전히 쓰라린 역사의 상처가 있어, 진물이 나오는듯하여 마음이 답답하고 여전히 아프다.


불행하게도 아물지 못한 상처마저도 역사를 지탱해주고 있다. 이 시대에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으로 원치 않게, 불법적으로 침탈당했던 아픈 역사가 기억되고 있음에도, 그 아픔을 증명하는 상처가 아직도 이렇게 오래도록 남아 우리를 괴롭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를 잊어갈 무렵, 아직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며 눈물처럼 진물을 흘리며 마음이 쓰이게 한다. 제주도에서도, 홍콩에서도, 그때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다고 스스로를 알리려 애쓰며 역사를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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