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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Jan 07. 2021

결혼, Credit

결혼식을 마친 지친 몸으로 아내와 호텔 방에 들어서자 황홀했다. 눈 앞엔 해가 저물어가는 겨울 오후, 남산타워와 이태원 일대의 전경이 펼쳐졌다. 일순간 어깨에 무게감이 사라졌다. 그 순간부터 회사에 복귀하는 전날까지 어깨가 뭉치지 않았다. 결혼식을 치뤄내기까지 마음 무거웠던 날은 이제 지났고, 둘만의 안락한 시공간으로 들어왔다. 외부의 아니꼬운 요소들은 원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종의 진공상태. 


사실 전날까지만 해도 부담감과 죄의식은 나를 옥죄어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그 원천은 나의 사람들이었다. 내가 소식을 알리면, 나를 축하해주고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들. 코로나 때문에 초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 친구 저 친구 연락을 그래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 끝에 카톡을 보내면 고맙게도 축하해주었으나 건조함이 못내 아쉬웠다. 욕심임을 잘 알면서도, 나의 사람들이 편히 앉아서 밥이라도 한 끼 하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도 미안함이 앞섰다. 마찬가지로 조직에서도 소식을 알리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하여 열심히 인사를 다녔건만 상황이 묘했다. 어느 날은 자괴감이 들었다. 수금하러 다니는 사람처럼, 구걸하러 다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좋게 말해 상호부조의 의미라고 하지만, 전 국민이 뻔히 아는 결혼식 취소 기로에 놓인 상황에 스스로가 민망했다.


이런 무거운 마음도 결혼식을 마치고 나니 덜어진 것이다. 산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씻고 짐을 정리했다. 누군가 혈연의 경조사면 언제나 상부상조하는 친구 무리들이 방명록을 정리해주었다. 그 방명록을 집으면서부터 다시 무게감이 들었는데, 불편하고 어려운 부채의식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겸허하게 만드는 마음이라고 해야 더 맞는 것 같다. 나는 그 친구들의 식장 내 식사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여 근처 식당을 예약해줄 수밖에 없었다. 일을 부탁해놔서 다 같이 제대로 사진 하나 못 찍어 조금 아쉬웠다. 사회를 봐준 친구와 축가를 맡아준 친구 역시 이 어려운 상황에 당연히 해주겠다고 나서 준 마음이 물씬 느껴졌다. 평시에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그 결심이 감사했다.


아무튼 나는 방명록을 들고 찬찬히 넘겼다. 왔던 거의 모든 이들의 얼굴을 기억하며 하나하나 매칭 해본다. 마음만 전달해준 이들도 물론 있는데, 나를 진심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크게 부딪혀왔다. 축의금을 많이 주고 적게 주고의 문제도 아니었던 것 같다. 직접 온 사람들은 직접 찾아온 그 마음을 더하여, 직접 오지 못한 사람들은 또 그 마음을 더하여 나에게 전해주었다. 5만원, 10만원, 20만원이 액수로 전해지지 않았다. 애틋한 마음들로 전해졌다. 액수의 크고 작음이 마음의 애틋한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마음 마음으로 다가왔다. 아직 취업을 못해서 축의를 많이 못한다며, 13년 전 내 생일 때와 같이 편지를 써온 친구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가 생각했다.


부끄러웠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내가 뭐라고 나에게 마음을 전할까. 나는 그 사람들을 매사 진심으로 대해왔나. 내가 그들에게 충분히 애틋했을까. 이 부끄러움을 나는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까 싶었다. 묻어나는 그들의 진심 속에 파묻혀 울었다.


릴보이의 곡 'Credit'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나는 원해 영원히 남기를 너의 기억 속에 이 막이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모두 떠나가겠지만 잠시 남아줘 짧은 영화라고 너는 느낄 수도 있지만 스쳐가는 많은 이름 어딘가에 I might be in your Credit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Page 네가 나올 때까지 읽었으면 해

진심을 선물한 모든 이들, 특히 아무것도 모르고 별 볼 일 없던 시절부터 곁에서 신용해준 모든 이들의 credit에 담기도록, 먼저 나의 credit에 손수 적어 마음을 갚고 싶다. 빚이 아닌 은혜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보여준 마음 꼭 갚을 테니, 가사에서처럼 당신들의 이름이 나오기까지 기다려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오늘 역시 고맙다는 말 이상의 말을 찾지 못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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