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을 한다고 말을 하면 많은 친구들은 꽤나 놀랐다. '화들짝'이나 '세상에'보다는 '네가..?'라든가 '갑자기..?'에 가까운 반응으로 놀랐다. 가족들도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눈치로 놀랐다. 코로나 시국이었음을 차치하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나도 놀랐으니까 말이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비혼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에 대한 로망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 나를 가장 아꼈던 사람이고 나의 삶에 도취된 사람이었다. 언젠가 어린 날엔 스물여섯에 결혼을 하고 싶다는 큰 꿈을 그리기도 했지만 스물여섯의 나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결혼 부적격자였다. 합격한 후에도 결혼이 간절한 적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결혼에 적합한 마음과 환경이 준비되었다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흘러서 마음가짐이 비로소 어른다워지고 결혼을 위해 부족함 없는 사회경제적 여건이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양가 인사를 드리고 날짜를 잡은 뒤 결혼식장을 알아보고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발단은 처가댁 식구들과 식사를 하자는 아내의 제안을 수락한 것이다. 수락한 이유가 어이없다.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왠지 지금 이 타이밍에는 인사를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식사를 한 것이다. 그 식사 자리 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과의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그게 벌써 5, 6월이다. 그때부터 12월 19일까지는 시간의 밀도가 달랐다. 돌이켜보면 빠르기야 하지만 보통의 1년 이상되는 시간이 반년 안에 다 들어있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의 불확실성 속에서 결혼식장을 잡고 본격적으로 결혼 소식을 알리며 식을 준비한 9월부터는 아내와 내가 마땅히 찍은 사진조차 없다. 무언가 엄청난 것이 지나갔다.
엄청난 밀도의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너무 당연스럽게 결혼 준비를 받아들였기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누군가 물어올 때면 너무 횡설수설하기도 했다. 기자회장에서 쏟아지는 셔터를 받아내며 자신에게 감정과 경위, 이유 따위에 답해야 한다면 질문과 답변들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준비하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셔터 세례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저 맘 편히 만난 사람의 '결혼은 왜 결심한 거야?'라는 질문도 날카로운 플래시 같았다. 번쩍, 날아든 질문의 빛에 순간 얼었고 뜸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은 아내로 젖어 들어 결혼을 결심하긴 했을텐데, 이는 마치 안개비에 옷이 젖어드는 과정과 비슷해서 이걸 눈치채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결혼을 의심하지 않았고 이유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채 결혼 준비를 위한 본격적인 궤도에 먼저 올라선 것이다.
아무튼간에 결혼을 결심했냐는 질문의 답은 특별하지 않다. '그냥 같이 살면 행복할 것 같아서'라는게 내 답이었다. 사실 오만가지 이유를 다 들어도 그 말만큼 명확하게 내 마음을 설명할 길은 없었다. 너의 머리 냄새가 좋고, 웃음이 좋고, 늦잠 자는 너를 두고 혼자 라디오 듣는게 좋고, 모든 것이 좋아서 결혼을 하는 것인데 이걸 다 설명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이 사람과 살아야겠다 싶은 그 이유는, 너와 함께하면 행복할거라는 투박하고 평범한 마음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