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내며

나의 올해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작년, 재작년 치열하게 놀러 다니고 순전히 나의 욕구에 맞는 삶의 리듬 속에 몸을 맡겼어서 그런가 보다. 어쩐지 사회의 리듬은 아직까지 어색하고, 리듬을 탈만큼 익숙하지도 않다. 너무 빨라서 두려운지 재밌는지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를 몰랐는데 어느새 카페엔 크리스마스트리가 서기 시작했고 지금 내 옆 라디오에서는 DJ가 캐럴을 소개한다. 그래서 이젠 명확히 느낀다. 약간은 두려운 감정이 든다.

세종시에 온 뒤 처음 맞게 된 가을인데, 맞이하지도 못했고 만끽하지도 못했다. 그저 떠나간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을이 왔던 것을 알게 되었다. 손 뻗으면 옷자락에라도 닿을지 모르겠지만 요즈음에 그러했듯이 '손 뻗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막상 손을 뻗기 시작하면 눈발이 날릴 것이다. '밤공기가 차갑고 풀벌레 소리가 짱짱한 것이 가을이 오려나보다'라고 생각을 하고 가을이 왔는가 고개를 들어보니 낙엽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보내야겠다.

라디오만 있으면 방학 때 친구를 그리 많이 만나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았고, 새벽에 잠에 들기 아쉬워 세상 이야기에 귀를 열었던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가을을 좋아했을 것이다. 차갑되 춥지 않은 밤공기가 좋았다, 바스러지는 낙엽 소리가 좋았다. 선명하고도 희미한 가을의 이미지가 좋았다. 가을은 일의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내가 호불호가 확실치 않고 선호가 명확하지 않아도 좋아할 수 있는 계절이라 좋았다. 가을이 왔음을 안 날에는 늘 반가웠고 아쉬웠다.

그래도 사진첩을 열어보니 올해에도 겨울을 지나 봄, 여름이 순차적으로 온 것 같기는 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자료의 객관성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믿도록 해야겠다. 그저 너무 정신이 없었다. 사회의 리듬이란 것은 언제쯤 익숙해질지 모르겠다. 만약에 익숙해진다면, 그때는 가을을 제대로 맞이한 뒤 보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일로 쉽지 않은 하루들이다. 가을을 누리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얼마만인지도 모르겠으나 밖으로 나갔다. 갈대숲 뒤에 텐트를 펼치고 산책을 했다. '가을이구나, 가을이었구나, 가을이 가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짧고 특별할 것도 없는 시간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보내야만 하는 가을이다. 가을은 여전히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계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