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나미비아 여행 3일차
남아공 여행 3일차, 테이블 마운틴에 가는 날이었다.
테이블 마운틴 케이프타운 시내 거의 모든 곳에서 보이는 산이다.
평평한 대지를 일정부분만 지정하여 그대로 들어올린 듯한 느낌이 정말 '테이블'이라 이름붙일만 하다.
단지 평평하다는 특징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와는 판이하게 다른 지질과 식생을 보이고 있는게 느껴졌다.
이러한 테이블 마운틴 바로 아래에서 자는데, 꼭 한 번 올라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미리 우버를 이용하여 택시를 잡아두고 곧바로 테이블 마운틴으로 이동했다.
테이블 마운틴을 올려보면 그 자태가 사뭇 늠름하다.
깎은 듯, 쌓은 듯 신이한 바위산에 올라가고 싶은 호기심이 컸다.
다만, 언제나 가장 큰 변수는 날씨였다.
어제도 희망봉을 구름 속에서 보게되어 무척이나 아쉬웠는데 오늘의 날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닷가 쪽은 구름이 조금 걷힌 것처럼도 보였으나 중요한 것은 테이블 마운틴이 구름 속에 들어앉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안 올라갈 것도 아니고, 오후에 올라가면 케이블카 대기줄이 굉장히 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우리는 '못 먹어도 고'였다.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는 360도 회전을 하며 산으로 올라갔다. 구름 속으로 올라가는 것이 마치
이계(異界)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테이블 마운틴에 오르고 나니, 그곳은 이계였다.
구름 속에 갇혀 걸은 것도 그러했지만, 바위나 초목의 모양새가 매우 독특했다.
바다 속 수초들을 보는 느낌임에도 바다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달에 생명체가 살던 시절 같기도 하고.
케이프 타운 시내에서는 못 보던 식생이 갑자기 펼쳐진 것이라 더더욱 그랬다.
또 재밌는 포인트로는 DASSIE와의 시간이었다. 우리 말로는 바위너구리라 불리는 종인데 방문객들에게 이미 익숙해져서인지 특별히 도망가려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한 어린아이가 들고있는 샌드위치를 탐하기까지 했다. 순둥한 외모와 달리 생명력은 강인한가보다.
우리는 테이블 마운틴에 올라갈 때 한가지 큰 실수를 범했다. 바로 테이블 마운틴을 걸어서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전적으로 내 실수였다. 평상시에 트래킹이나 등산에 흥미가 많았고, 테이블 마운틴도 좀 더 오래 걷고 싶은 욕심이었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길에 익숙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전 날부터 흐렸던 날씨때문에 물기가 많은 바위들이 꽤 있었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하산로로 택한 길이 심각한 진창이었다는 사실이다. 습지처럼 변해있어서 풀숲으로 피해 걷기도 했는데 그것도 잠시일 뿐이지 도무지 속도도 나지 않고 친구들의 신발도 하나 둘 진창에 빠져 젖어가고 있었다. 굳이 마음 아프게 걸어갈 필요는 없었기에 미련없이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친구 하나가 휴대폰을 떨어뜨려 고장이 났다. 이때까지는 여러모로 고난과 역경의 테이블 마운틴이었다.
케이블카 탑승장 근처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춥고 지쳐있었다.
아까 가보지 않았던 반대쪽을 구경했으나 역시 컴컴한 구름만 보였다. 탑승장 옆의 기념품점을 구경하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몸이나 녹히고 가는게 낫겠다 싶었다. 라떼도 한 잔 하고 어제봤던 국회의원 일행도 다시 만나고 이렇게 노곤노곤하게 숙소로 돌아가겠거니 했다.
슬슬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아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다들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한바퀴 돌아보고는 말을 잃었다.
너무 놀랐을 때 넋이 나가 아무 말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딱 그런 경우였다. 전망이 튼 것이다.
황홀한 절경은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구름은 우리가 딱 테이블 마운틴의 진면목을 느낄 시간만 주고는 다시 몰려왔다. 딱 절정에서 우리는 테이블 마운틴을 볼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산 아래에 내려오니 푸른 하늘과 바다가 산과 어우러져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테이블 마운틴은 다시 구름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가 아쉬움만 남길까 측은한 마음에 하늘이 선심을 쓴건 아니었을까.
맑은 날씨와 함께 숙소에 가기 전, 어제갔던 워터프론트에 들렀다. 물론 사진 속의 이층버스를 이용하지는 않았다. 케이프타운의 예쁜 투어버스를 두 눈과 렌즈에 담고 우리는 다시 우버를 이용했다.
친구의 휴대폰 수리와 신발 구매가 주된 목적이었는데 모든 것이 애매했다. 다음날 나미비아로 출국이 예정되어 있어서 수리도 어려운 상태였고, 그렇다고 휴대폰을 새로 사기는 아까웠다. 신발도 마음에 드는게 딱히 없다고하여 빠르게 마음을 접고 배부터 채웠다.
STEERS라고 하는 로컬브랜드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나미비아에도 있던 것을 보면 남부 아프리카 이곳저곳에 체인을 두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패스트푸드였다. 때로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식사보다도, 자극적인 칼로리 폭탄 패스트푸드가 더 먹음직스러워보인다.
식사 후 다음날 아침거리를 비롯하여 간단히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은 우리 여행의 메인 여행지인 나미비아로 떠나는 날이다. 새롭게 바뀔 환경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