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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Jan 21. 2017

누군가의 하루

시대에 대한 일기

     

 시대가 격변한다

 고들 말한다. 마치 ‘격변하다’라는 동사는 ‘시대’라는 명사 뒤에 따라오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시대는 언제나 격변한다고 말해진다. 여하튼 나는 학교에 와 있다. 게시판이 대자보들로 가득 채워졌다. 같은 주장, “                        ”를 다르게 풀어낸다. 모두 나의 후배들이 쓴 것이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간다. 한 글자 한 글자, 정독할까 고민하지만 나는 다음 수업으로 가야 한다. 모두가 언젠가는 다음 수업으로 가야 한다.


 사회과학대학의 바닥엔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짙은 회색의 오르막길을 지나야 인문대학이 나온다. 어느 기점을 지나면 건물의 동수가 한 자리 수로 떨어지고 바닥은 어느 새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땅의 재료마저도 둘은 서로 다른 것을 배운다고 주장한다.

 저 멀리, 같은 대학교로 온 중학교 동창이 보인다. 그녀는 팜플렛을 들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무언가 문구 적힌 것을 들고 있었다. 피켓을 쥐기도 했고 천막 아래에 서 있기도 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 오랜만이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에게 인사할 수 없을 것 같다. 비슷한 색의 외투를 걸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                                            ”

 인문대학에 도착하려면 연못 옆의 계단을 지나야 한다. 그녀의 목소리가 연못가에 울리자 계단을 오르는 나의 시야가 갑자기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사진들처럼 흐려진다. 시선은 흔들리고 세상이 요동치며


 나는 수업에 가고 있다     


 . 수업 직전의 강의실이 수다로 차오른다. 내 앞에는 갓 만들어진 것처럼 광이 나는 과 잠바를 걸친 세 명의 학생이 있다. 그들의 팔뚝에 적힌 학번을 보고 나보다 어리다고 짐작해본다.

  “                          ” 여학생이 장난스럽게 재잘대자,

 “                                         ” 

 그 옆의 남학생이 진지하게 맞받아친다. 나는 관심이 없는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운다. 대화를 엿듣는 방법은 간단하다. 시선을 핸드폰에 고정하거나 엎드려서 자는 체를 하면 된다. 이 수업의 내용과 교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사실 셋은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든 대화는 어떻게든 시대에 대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서 4년 내로 졸업은 힘들 것 같아, 라는 사담도, 걘 솔직히 너무 예뻐서              줄 알았어, 라는 가십도. 재수강. 삼수강. 쁠몰.    . 꿀강. 헬강.    밀당. 썸.  . 극혐. 읽씹. 안읽씹. 갖가지 신조어도. 모든 사람들의 모든 말 속에 시대가 꿈틀거린다. 

 여학생이 한숨을 쉬면서 대화가 종결됐다. 교수님께서 들어오셨다. 하지만 세 명이 동시에 노트북을 편 것, 그리고 화면의 한 켠에 카카오톡 메신저 창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업을 들으면서도 얼마든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                 ” 

 교수님의 첫마디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

  “                                                   ”

 아까 전 중학교 동창이 외치고 있던 주제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였다. 강의실에서까지 이 얘기를 듣다니 세상이 정말 시끌시끌하긴 한가 보다. 나는 차가운 커피를 빨대로 쿠루룩 쿠루룩 들이마신다. 얼음 녹은 물이 커피와 섞이는 바람에 맛은 영 이상했지만 남길 엄두가 안 난다. 커피가 점심밥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커피를 마셔야 하고 그럴 때마다 줄을 서야 한다. 자면 안 되는 것도 음료 한 잔이 그렇게 비싼 것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것은 누구의 탓인가     


 ? 수업시간엔 많은 사람들이 벙어리가 된다. 어디서는 그렇지 않다고도 들었지만 여하간 여기선 모두 입을 오므리고 있다. 나 또한 입술을 잠그고 받아쓰기 기계가 된다. 유일한 일탈은 필기한 것 옆에 작은 물음표들을 그려 넣는 일이다. 묻지 못한 질문들은 곧 망각의 저변으로 가라앉는다.

 앞의 세 학생들은 교수님께서 말씀이 딱히 없으실 때에도 자판을 두드린다. 유심히 보니 수업필기를 한 쪽으로 밀어놓고 카카오톡을 하고 있다. 내용이 궁금하지만, 메시지의 길이로 봐서 ‘ㅋㅋㅋㅋㅋㅋㅋㅋ’들이 남발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뒤에서 보기에 노트북에 비친 그들의 모습 중, 폭소는커녕 미소 짓는 얼굴도 없다.     

 

 수업이 끝났다. 집에 가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사회과학대학을 지나 정문까지 걸어가야 한다. 벽돌길이 끝나자 아스팔트가 펼쳐졌고 걸음을 더욱 재촉하니 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가 나왔다. 너무 추워서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택시를 탈까 생각해본다. 정문의 버스정류장까지 꽤 걸어야 하기도 하고, 버스를 타면 서서 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침 빈 택시가 서서히 근처로 다가오고 있다. 택시를 타는 것이 사소한 운명처럼 느껴져서 그대로 들어가 앉았다.

 여태까지 경험해본 택시 기사님들은 둘로 나뉜다. 목적지가 밝혀진 후에도 나에게 말을 거시는 분들, 아니면 끝까지 침묵을 지키시는 분들. 오늘의 기사님은 전자였다. 지하철역까지 가달라고 하자마자 내게 대화를 신청하신다.

 “              ”

 택시 기사님으로부터는 처음 받아보는 주제였다. 어제 도심에서 일어난 사고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나는 제대로 아는 바가 없어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 그렇군요, 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                                               ”

 기사님께서는 열변을 토하시느라 노란 신호등의 끝자락에야 차가 겨우 멈춰 섰다.

 “          ”

 나는 짧게 대답하면서 주섬주섬, 지갑을 미리 꺼낸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돈을 드리고 택시에서 내린다. 이제 역까지 걸어간 다음에 지하철을 타고 한 번 환승한 뒤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걸으면 우리 집이다.     


 지하철에 올라탔다. 만원은 아니었지만 내가 앉을 자리도 없었다. 적당한 어딘가에 섰다. 내 앞의 사람들은 졸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나는 창 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똑같은 풍경을 응시했다. 아주, 아주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집들, 가게들이 시야를 메웠다.

 건물들의 벽면을 장악한 간판들은 저마다 너무 현란해서 오히려 눈길이 가지 않았다. 차도엔 차들이, 보도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 도시는 삶들로 꽉 들어차 있다-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기 위하여, 제 자리를 찾으려 모두가 애태우지만 어느 샌가 포화되어 보였다. 촘촘히 채워진 달걀판이 생각났다. 한 계란이 깨지지 않으면 다른 계란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 말이다. 나는 미소도 울상도 짓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즉 모든 것을 경계하는 눈빛을 하고 서 있었다.

 그 때 차량과 차량을 연결하는 문이 열렸다. 어떤 할머니 한 분께서 눈을 질끈 감고 왼손에 빨간색 바구니를, 오른손에 지팡이를 든 채 들어오셨다. 할머니의 목에는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가 걸려 있었고 그로부터 애절한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갑작스레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이어폰을 꽂지 않은 몇몇 사람들만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께서는 지팡이로 발 디딜 곳을 두드리며 천천히 걸으셨고, 누군가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으며, 누군가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돈을 줄 것도, 시선을 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오는 것을 느꼈다.

 할머니께서 내 근처에 다다르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녀의 행로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두 발을 최대한 내 앞 승객의 명품구두에 밀착한 채 길을 비켜드렸다. 그 때 트로트 소리가 멈추었다. 카세트 테이프가 돌연히 고장 난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당황하신 듯 연신 목 근처를 쓰다듬고 플레이어를 만지작거리셨다. 기계의 버튼이 마구 눌리는 소리가 귓등을 괴롭혔다. 난 내 앞에서 가방을 만지작거리는 승객과, 내 뒤의 할머니 사이에서 두 갈비뼈 안이 얼어버린 채로 한동안 서 있었다.

 다행히 카세트 플레이어는 다시 작동했고, 할머니께서는 내게서 점점 멀어지셨다. 트로트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그러나 내 영혼은 여전히 냉동고 같았다. 시대와 나는 화(和)할 수 없다     


 . 집에 돌아가니 TV 속 뉴스도 시대의 격변을 알렸다. 택시 기사 아저씨께서 말씀하시며 언성을 높이셨던 사건에 대해 경찰이 수사 중이란다. 나는 한 10초 정도 화면을 응시하다가, 채널을 돌려서 어느 연예인 부부의 결혼식 장면을 방영하는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그것마저도 곧 질려버려서 텔레비전을 껐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김치와 김을 꺼내 홀로 저녁밥을 챙겨먹는다. 식탁에 신문이 나와 있었다.             ,             ,               등. 늘 그래왔듯 모든 제목을 훑었지만 아무 기사도 읽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서는 묵묵히 잘 준비를 마치고 핸드폰을 켰다. 한참 자판을 두들기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목이 뻐근했다. 요즘은 나처럼 목이 뻐근한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나는 아픈 부위를 주무르면서 침대에 누웠다. 잠들기 전,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신곡을 틀어본다. 요즘엔 정규 앨범으로 잘 내지 않고 한 곡씩 찔끔찔끔 나오는 게 트렌드인가 보다. 하여튼 저번에 나왔던 곡과 많이 비슷하다. 슬슬 졸려 왔다. 좋은 징조다. 나는 내일 아침 수업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왜 가야 하지? 그건 불필요한 질문이다. 어찌 되었든 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각도 안 된다. 결석은 더더욱 안 된다. 이유는 몰라도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15년 씀.)



Cover image: Fernand Leger, Animated Landscape,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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