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
안타깝게도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원작이 아니라 교과서의 개념으로서 먼저 배워야 했다. 그러다 ‘독일어로 읽는 문화와 예술’이란 수업을 들으면서 브레히트의 글을 읽게 되었고, 그의 작품 세계에 관심이 생겼다. 실제 연극을 볼 기회는 흔치 않을 것 같아 희곡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의 선택은 <서 푼짜리 오페라>였다. 이틀 동안 두 번 연속으로 읽어 내렸다. 희곡에 익숙하지 않아서 1회독 때는 내용만 간신히 이해했다. 2회독 때 비로소 작품의 주제의식을 파악했고 무대를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었다. <서 푼짜리 오페라>는 세 가지 의미에서 내게 특별했다.
먼저,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촘촘히 짜여 있었다. 날강도 매키 메서와 거지들의 우두머리 피첨 사이의 갈등 구도, 매키 메서와 피첨의 딸 폴리 사이의 결혼, 매키 메서와 경찰 브라운 사이의 친분, 매키 메서와 브라운의 딸 루시 사이의 과거 등 등장인물 모두가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작가의 철저한 준비성과 정교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둘째로 연극으로서는 흔치 않게 중간에 삽입된 노래들이 인상 깊었다. 서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주제를 다룬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극에 비연극적 요소를 첨가함으로써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고 연극을 재정의했다는 의의도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특수한 결말이 여운을 남겼다. 매키 메서는 체포되지만 갑자기 사면된다. 이러한 반전은 의문과 허탈함을 안겨주면서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이로써 현실에선 그런 행운을 바랄 수 없다는 메시지가 강화된다. 서사극의 특성을 원작을 통해 직접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비판적으로 보아야 할 부분도 있다. 제 2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선술집 제니는 “우선은 처먹고 나서야 다음이 도덕이라는 것을”이라고 노래하며, 범죄와 불건전한 생활에 빠져드는 가난한 사람들을 변호한다. 그러나 가난으로 비윤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단언할 수 없다. 너무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장발장에 대해서 사회는 동정의 시선을 던져야 할까, 아니면 질서를 위해 엄정히 처단해야 할까? 윤리는 모두의 것일까, 아니면 풍족한 사람들만의 것일까?
<서푼짜리 오페라>의 주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악행은 개인 심성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구조의 책임도 막중하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희극적으로 풀어나가면서, 지식인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질문들을 던져준다.
서 푼짜리 오페라(베르톨트 브레히트, 이은희 옮김, 2012, 열린 책들)를 다 읽고.
Cover image: Honore Daumier, The Third-class Carriage, 1862-1864, oil on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