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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Mar 06. 2016

이방인

카뮈


 이 책을 읽은 것은 제주도에서였다. 평소 겁이 많던 나는 여행 동안에 <이방인>을 읽으며 강한 사람이 되리라 결심했다. 카뮈의 실존주의가 내게 힘이 될 것이란 기대를 품고 주인공 뫼르소의 행적을 읽어 내렸다.


 뫼르소는 활기 없는 일상을 반복하며 효, 사랑, 윤리 등 세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치들에 철저히 무관심하다. 그는 엄마의 죽음에 눈물 흘리지 않고, 애인과도 관계만 맺을 뿐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또 태양이 강렬하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사람을 죽인다. 살인 후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며 신으로부터 구원받기를 거절한다. 인간은 어차피 모두 죽을 운명이기에 언제 죽어도 무관하다고 덤덤히 말할 따름이다.


 책을 덮고 나서 떠올랐던 질문은, ‘이런 뫼르소의 삶에도 의미가 있을까?’였다. 카뮈는 결론적으로 그렇다고 말하지만 동의할 수 없었다. 뫼르소가 무시하는 가치를 위해 일생과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다만 확실한 것은, 사형을 선고받은 뫼르소와 우리들 자신이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은 모두, 우주의 기나긴 시간 속에서 잠깐 삶에 머물다가 휘발되고 말뿐이기에 뫼르소와 똑같이 끝을 선고받았다.


 롤랑 바르트는 이 책의 출판이 건전지의 발명에 필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비유에 공감하기란 어렵다. 건전지는 쉽게 사용할 수 있고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으나 <이방인>은 참 난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마음이 편안해진 것을 보면 뫼르소를 통해 내가 얻은 점도 있는 듯하다. <이방인>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방인(알베르 카뮈, 최헵시바 옮김, 2012, 더클래식)을 다 읽고.

Cover image: Portrait of Maude Abrantes, Amedeo Modigliani, 1907,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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