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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Apr 26. 2016

죽은 인간도 인간인가?


 문득 장례식마저도 살아있는 인간을 위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난 이는 더 이상 현상을 보거나 들을 수 없으니, 다만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집단적인 애도를 통해 감정을 정화시킬 따름인지도 모른다. 이집트의 사자의 서, 여러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내세마저도 죽음이 아니라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죽음은 무서운 게 아니라고 위로를 하는 목적이든 현세는 힘들어도 내세엔 행복할 거라는 희망을 주는 목적이든 결국 대상은 살아있는 인간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논리는 '죽은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전제 하에 전개된다. 만약 죽은 사람도 사람의 범위 안에 포함할 수 있다면 이 글의 첫 문단은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따라서 죽은 인간도 인간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일단 '무엇이, 어떤 존재가 인간인가'를 논해왔던 무수한 사상가들이 떠오른다. 개울과도 같이 얕은 나의 철학적 지식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가장 유명한 듯 싶다. 그런데 죽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하데스가 지배하는 지하세계에서 혼령들이 서로 모여 회의라도 열지 않는 이상 눈 감는 순간 모든 소통은 중단된다.


 그러나 은자(隱者)도 인간이기 때문에 타인과 접촉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라고 할 근거가 없다. 도구를 쓰는 인간, 호모 파베르. 유희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종교를 향유하는 인간, 호모 렐리기우스...... 클리셰라면 클리셰인 말들이 뇌리를 스치지만 확실히 죽은 사람은 쟁기질도 카드놀이도 기도도 못한다. 내가 아는 한에서 '인간'을 정의하려 한 모든 시도는 사람 앞에 '살아있는'이라는 수식어를 암묵적으로 전제한 듯 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사별한 배우자를 그리워 하고, 냉소적인 척 했건만 나 또한 죽음이 무섭고 죽은 이들이 보고 싶으며, 사람들이 사자(死者)를 그토록 선명히 기억하는 것을 고려하면 도저히 죽은 인간을 인간의 범주 밖으로 내몰 수가 없다. 그저 한 때 인간이었던 존재라고 치부하기엔 이 세계에 그들의 흔적이 어떤 형태로든 - 자손, 사상, 물질문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이마저도 그저 살아있는 인간들의 주관에 남은 표상에 불과할까.


 죽은 인간도 인간일지 고민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인간은 죽기 때문이다. 나의 죽음, 아니 나의 삶! 그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꽃봉오리가 잎을 피웠다가 어린아이의 장난에 퍽 꺾여버리는 것은 인간의 죽음과 다른가? 어린아이에게 한 순간 아름다운 존재로 비춰졌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 꽃은 의미있었는가? 결국 시들어 사람들의 발굽에 짓이기고 토양 속으로 스며들 저 꽃은 여전히 꽃인가- 아니면 죽음은 살아생전 가졌던 모든 것의 상실과 일치하는가?


 대답 없이 질문만 느는 느낌이다. 이 모든 사색은 지하철을 타다가 시작되었다. 앉아서 바깥 야경을 바라보는데 갑자기-사실 모든 사고는 본질적으로 돌연하다- 나의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 것이다. 누가 왔다 갈까, 어머니는 많이 우실까, 그러면 너무 죄송한데, 친구들은 허탈해할까,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나를 애도해줄까 고민하는 가운데, 어차피 죽어버리면 나의 의식마저도 콘센트 뽑힌 드라이기마냥 무용해지는 것인데 생각할 가치가 있나 싶었다.


 슬프게도 직관적으로는 죽은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할 수 없지만 일단 그렇다. 이 철학적 질문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전혀 모르겠다만 모두에게 보편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삶이 소중하다. 소중한 것은 삶이다. 현재다. 이곳이다. 이 순간이다. 타자를 치는 지금의 내 손이 중요하다. 내 피부와 맞닿는 이불의 촉감이 중요하다. 내 머릿속에서 계획되는 글이 중요하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사랑-혹은 성스러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Cover image: Adriaen van Utrecht, Vanitas, composition with flowers and sk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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