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보면 정기적으로 죽음을 갈망하게 된다. 내 무능력과 여태껏 쌓인 지식의 무게 사이의 대비, 나의 분투와 무관하게 흐르는 시간과 출렁이는 공간을 의식하면 '뱀'에게 목구멍을 물린 것만 같다. 머릿속은 공장의 소음으로 자욱하고 심장은 녹슬어 있다- 이렇게 지성과 영혼의 기관은 병들고 마는데- 그런데도 나는 쓸 수 있을까? 사실 언제든 글쓰기를 그만둘 수 있다! 펜을 놓고 산보라도 다녀오면 된다. 하지만 필기구가 나의 손아귀로부터 추락하는 순간, 나의 삶마저도 최악의 심연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바닥 없는 우물로 가라앉아 자괴감에 익사하지나 않을까- 그러니까 나는 이 펜이 내 생명을 붙드는 최후의 링거 같다. 이 잉크가 내게 수혈되지 않으면 나태에 의해 글쓰는 자아가 살해당할 것이다. 다음에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엔 잉크와 섞어 마셔야 한다- 타살보다야 아름다울 지적 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