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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Jun 14. 2016

카페에 대한 고고학적 고찰

카페의 물질문화 탐구


 언제부 밥을 먹은 뒤엔 카페에 가는 것이 당연한 코스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사람들이 도서관을 나와 카페에서 책을 펼치기 시작했을까? 카페에 대한 사회적 애정은 한국에서 매우 최근 들어 생긴, 그러나 확산속도가 빠른 문화이다. 이 때 문화란 반드시 그 특성들을 상징하고 강화하는 물질적 흔적을 낳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물질문화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고고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카페 문화에 대해서도 고고학적인 탐구가 가능할 것이다.


 어느 고고학자가 한국 땅에서 카페의 흔적을 무더기로 발견했다면 어떤 해석을 도출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카페의 물질적인 구조부터 따져보도록 하겠다.


 1. 책상과 의자

(1) 움직임의 최소화

 테이크아웃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면 카페는 음료를 만드는 공간과 책상 및 의자가 놓인 공간으로 나뉠 수 있다. 커피는 '앉아서' 섭취되며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도 개인적인 업무도 모두 정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 즉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차분하게 구조화된 가구들 속에서 신체의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손님의 동선은 화장실이나 흡연실로의 간헐적인 이동을 제외하면 매우 한정되어 있다.


(2)이분

 카페에 오는 소비자는 저마다의 방문 목적에 따라 책상과 의자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에 대한 기호는 공통적인 것이라고 가정했을 때 카페에 오는 사람은 두 유형으로 나눠보자.

 첫째는 함께 온 사람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기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마주보거나 연인의 경우 상대방의 옆에 앉는다. 짐이 별로 없으므로 책상에 물건이 그다지 올려져 있지 않으며 음료들만 덩그러니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책상은 대화하는 사람과의 사이를 매개하는 가구이자 음료를 올려두는 단순한 도구이다.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카페를 노동이나 취미생활을 위해 방문한다. 이들은 자신의 업무 및 활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보다 합리적인 이유로 카페를 찾는다. 이에 따라 음료 외에도 책상 위에 노트북, 책, 태블릿PC, 필통 등을 올려두기 때문에 테이블의 기능이 다양하고 복잡해진다. 팀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이상 보통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혼자 오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1인테이블과 콘센트를 비치하는 카페들도 많아졌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한 두 시간 정도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수업 복습을 할 때가 많다. 안락한 인테리어에 재미있는 책 한 권, 맛있는 음료, 백색 소음, 커피 향기의 조합이 감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중요한 것은 방문 목적이 다를 때 카페 내 물질문화를 이용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만약 음료도 물질문화의 일부로 해석할 수 있다면, 음료는 첫번째 유형의 사람들에게 대화를 원활하게 하고 상호작용의 순간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미각적인 매개체인 반면 두번째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탁상업무의 노곤함을 덜거나 졸음을 쫓고 개인적인 취미활동을 윤택하게 해주는 에너지 드링크이다.


2. 반개방, 반폐쇄적인 구

 커튼이 쳐진 룸 형태의 카페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카페들은 개방적이면서도 폐쇄적인 가구 배치 구조를 갖는다. 책상과 책상 사이가 닫혀 있지 않기 때문에 타인을 관찰할 수 있으며 타인도 나를 관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방문자는 사적인 상호작용 및 자기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폐쇄성도 보장된다.

 카페의 이러한 반(半)개방-반폐쇄적 성격은 앞서 분류한 소비자의 유형 중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방문 동기가 된다. 이들이 왜 도서관이 아니라 카페로 향하는지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카페는 더 사적인 공간에서보다 개방적이기 때문에 벌러덩 누워버린다든지 쿨쿨 잠을 잔다든지 할 수 없다. 그런데 엄숙한 태도와 철저하게 절제된 행동이 요구되는 도서관보다는 편안한 분위기이며, 간단한 잡담과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카페는 집과 도서관의 중간쯤에 위치하며 방문객들의 "적당한 긴장" 상태를 유지시킨다. 도서관에서 완전히 집중할 때보다 업무의 효율은 낮을 수 있으나 집에 있으면 전혀 긴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도서관보다 방문의 심리적, 경제적 비용(이동거리의 측면에저)이 적은 집 앞 카페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러 떠나는 것이다.


3. 카페 내 물질문화의 정형성

 이렇게 다양한 파생적인 효과를 낳는 카페의 구조는 대개 정형화되어 있다. 어떤 시간에 어떤 지역에 있는 카페에 가도 우리는 책상과 의자가 있으며 반개방적이고 반폐쇄적인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에게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여러 카페에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이를 통해 카페에 대해 갖는 선호와 취향을 안정화시킨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형성으로부터 탈피함으로써 방문을 유도하는 카페들도 최근에 생겨났다. 보드게임카페, 만화카페, 방탈출카페 등이 그 예시이다. 이들은 카페에 대한 다소 고정된 인식과 대치되는 물질구조를 제시함으로써 스스로를 다른 가게들과 차별화하고 소비자에게 유쾌한 충격을 주고자 한다.


4. 굿즈 판매

 카페와 관련된 물질문화는 책상과 의자로 한정되지 않는다. 카페 브랜드들은 다양한 저마다 디자인한 텀블러나 머그컵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몇몇 제품은 출시 전에 줄을 서야 겨우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카페(특히 별다방)의 굿즈를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취향을 내면화 및 강화한다.


5. 사람들이 특정 카페에 방문하도록 하는 기타 물질적인 요인들에 대하여. 

 정말 커피가 좋아서 카페에 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음료 자체는 부차적으로 여기는 소비자도 많다.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 흐르는가, 책상의 높이가 어떠한가, 의자는 푹신한가, 적당히 넓어서 답답하지 않은가(혹은 두 세시간 쯤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가) 등 다양한 물질적인 조건들이 사람들의 카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행위주체에 따라 공간의 의미는 달라지기 때문에, 늘 소비자였던 나와, 아르바이트생이나 카페 주인의 시각은 다를 수 있음을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이 글에서는 '고고학'을 물질문화에 대한 학문적인 성찰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했으며, 고고학 내의 자연과학적 분석보다는 다소 현상학적으로-이 용어를 이렇게 경솔하게 사용해도 된다면-사용자의 의식과 인식에 비추어 간단한 고찰을 진행했다.

 과거의 유물과 유적을 추적하는 고고학으로 어떻게 현대적인 현상을 고민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첫째, 고고학이라고 해서 꼭 먼 옛날의 물질문화만을 다룰 필요는 없으며 둘째, '과거'라는 개념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섣불리 절대적인 시간축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얕기 때문에 혹시 내가 고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오해한 바가 있다면 댓글로 지적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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