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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날만 Jul 01. 2016

궁전과 노숙자



 그 궁전은 1000년의 풍파를 견뎌온 국보이다. 지금도 여전히 고고하고 영롱하게 고개를 치켜세우고 있다. 대문을 지나 터에 들어서는 순간 고대의 정취에 압도된다. 궁전의 기둥들을 넘나드는 바람엔 문명의 부흥기에 태어나고 죽었던 수많은 고대인의 숨결과 속삭임이 깃들어 있다. 흙내음이라도 함께 풍겨오면 모두가 그 역사의 현현에 감탄하고야 만다. 시간을 거스르는 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경험. 모두가 이 아름다운 국보를 사랑하는 듯했다.


 궁전의 외벽은 다양한 색감의 목재로 짜 맞춰져 있었으며 대문은 나무의 빛깔과 이어지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세월은 세월인지라 예전의 그 찬란함이 다소 바래버렸다. 목재는 낡아 균열이 생겼고, 외국에서 온 듯한 대리석도 금이 가 있었다. 이에 대응해 정부와 시민들은 궁전을 보수하자는 의견에 입을 모았고 10억이라는 예산이 책정되었다. 이 소식은 열화와 같은 호응 속에서 신문에 보도되었으며, 보수공사가 이루어지기로 예정된 바로 그 날, 노숙자 G의 이불로도 찾아왔다.


 G는 먼지투성이 바지 위로 신문지를 끌어올리려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10억! 암, 멋진 궁전이지 거긴. 이 나라의 보물이고 참 이뻐. 그런데 10억! 나는 1000원이 없어서 몇 끼째 물로 배를 채웠는데! 건물은 무너져도 아무도 배고프지 않을 테지만 G는 곧 아사라도 할 지경이었다. G는 씩씩거리며, 남아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보수 현장으로 향했다. 한 손엔 구겨진 신문지가 들려 있었고 난 데 없이 힘줄도 푸르스름하였다. 다른 한 손에는 옆 벤치의 구두장이 할아범에게 빌린 망치가 쥐어져 있었다.


 보수가 갓 시작된 현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양복 입은 정부 인사와 체크 남방 차림의 전문가, 안전모를 쓰고 얼굴이 벌겋게 익은 노동자들, 상황을 지켜보러 온 문화재 보호 단체. 단체의 회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식혜를 한 잔씩 돌리고 있었는데, 망치를 든 G도 노동자라고 생각한 듯 종이컵을 내밀었다. 밥알이 둥둥 떠 있는 뽀얀 식혜, 아주머니의 갈색 손, 그리고 가을의 태양, 무언가를 충동질하는 은은한 열기. 그늘 없는 무방비한 공간. 시원한 식혜. 보수. 아름다운 궁전. 시뻘건 대리석. 10억. 문득 이성의 겹을 뚫고 나오는, 분노가 결정화된 창- G는 돌진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노동자들은 아직 지시가 내려지지 않아 저들끼리 식혜를 마시고 있었고 전문가들은 설계도를, 공무원은 서류만 보고 있었다. 누구도 G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G는 접근 저지선을 거인처럼 뛰어넘고 대문의 대리석 기둥에 망치를 내리쳤다. 10억! 쾅. 대리석에 금이 갔다. 이번엔 목재 외벽에. 10억! 쾅. 나무가 추하게 음푹 패였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G를 발견했다. 식혜를 주려 했던 아주머니는 자신이 죄라도 지은 것처럼 절망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전문가는 쌍욕을 내뱉었고 노동자들은 종이컵을 내던지고 제정신이 아닌 G를 막으러 우르르 몰려갔다. 식혜의 밥알이 모래자갈과 섞여 축 늘어졌다.


 노동자들이 G의 양팔을 덥석 붙잡고 안간힘을 다해 그를 벽에서 떨어뜨렸다. 뒤늦게 가세한 시민들이 G의 손에서 망치를 뺏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나무가 심각하게 손상된 뒤였다. G는 완전히 저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팔다리를 격렬하게 휘저었다. 한 순간 그것이 처절한 무용으로 보였다면 잘못일까- G는 사지를 비틀며 외쳤다. "요게!" 가을 하늘은 여전히 맑고 쨍쨍했다. "요게 나보다 잘 살아!" G를 진압하는 노동자들의 팔은 억셌다. "요까짓게!"


 곧, 누군가가 부른 경찰차가 왔다. 제복 입은 사람들이 차에서 나와 저항하는 G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렇게 G는 경찰차에 강제로 태워졌다. 아주 마땅한 일이었다. 안전모를 쓴 사람들은 쑥덕거렸다. "딱한 인간, 딱한 인간."



Cover image: Jacques 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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