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오후의 지하철은 시원하다. 자리가 모두 찼지만 서 있는 사람은 한 둘뿐이라서 바닥이 다 드러났다. 열차가 덜컥거리는 소리만 반복되고 그 외엔 정적이 흐른다. 모두들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졸고 있다.
지하철은 옥수역을 지나 압구정역에 가까워 간다. 유행하는 운동화들이 슬슬 자리에서 벗어나 문 쪽으로 향한다. 바깥을 등진 일곱 개의 좌석엔 이빨 빠진 어린이의 입처럼 회색의 공석들이 생겨났다. 왼쪽부터 앉았다, 앉았다, 안 앉았다, 앉았다, 안 앉았다, 안 앉았다, 앉았다.
그들 뒤에 창문 밖으로는 한강이 지나간다. 철강 다리들이 휘청거린다. 물살이 원래 이렇게 거칠었나. 게다가 대낮부터 자동차들이 불을 켰다. 햇빛과 대적할 정도로 번쩍인다. 침묵이 현란하다. 조물주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느낄 것이다. 주름이 난 대로 파삭 파삭, 이마가 갈라져버릴지 모른다.
그때 임산부 보호석 옆에 앉아있던 노인이 갑자기 컥! 소리를 냈다. 이어폰을 꽂지 않은 사람들만 노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노인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컥컥. 노란 체크남방이 노인의 손아귀에 구겨지면서 정사각형들이 죄다 망가졌다. 노인은 급기야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팔꿈치가 바닥에 세게 부딪쳤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어폰을 뽑았다.
노인은 바닥에 엎어진 채 남은 한 손으로 목을 턱, 잡았다. 숨 쉬는 것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아니 숨을 쉬지 못하는 건가? 노인 옆에 있던 임산부가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며, 불러온 배 앞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녀의 목소리와 노인의 신음, 그리고 가까운 역으로 119를 부르는 또 다른 목소리가 동시에 차 안에 울려 퍼졌다. 결국 노인은 압구정역에서 임산부 그리고 구급차를 부른 사람과 함께 내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관사는 태연하게 지하철을 출발시켰다. 지하철이 다시 덜컥거리면서, 노인의 신음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차창 밖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겉으론 잠잠하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침묵이 아니다. 가장 무뚝뚝해 뵈는 승객마저도 놀란 눈치다. 그런데도 아마 옆 칸에서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열차는 이제 신사역에 다가선다. 모두들 입을 닫고 있으나 허공에 불안과 당황이 날아다닌다. 차내는 어수선했지만 문은 기어코 열렸다. 유행하는 운동화들이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은 오늘이 행복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신사역 가로수길에서 점심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는 문 바로 옆에 자리들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임산부 보호석은 비워놔야 함을 알기에 그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귀가한다.
덜컥. 덜컥. 세계가 균열을 일으키는 소리다. 이건 이어폰을 껴도 어쩔 수 없다.
Cover image: Edvard Munch, Train smoke,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