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나 할머니

by 김정준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영향 때문에 달고나가 인기이다. 드라마에 등장했다고 해서 잊힌 추억 속의 간식거리가 소환되고 재조명을 받는 것을 보면, 매스컴의 파급력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에도 1년 전부터 달고나를 파는 할머니가 등장했다. 초등학교가 인접한 대로변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이지만 교문 앞에서는 영업행위가 금지되어 있어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항상 웃음 가득한 밝은 표정을 하고 계셨다. 가다듬지 않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나 거친 두 손을 보면 만만치 않게 힘든 삶을 살아오신 것 같은데, 얼굴에서는 어두운 그림자를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기온이 내려가 추운 날이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나, 햇빛 강한 날이나 어김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항상 커다란 우산을 펼쳐놓고 그 아래에서 달고나를 만들고 계셨다. 우산 아래는 할머니의 조그만 세상이었다. 그 좁은 공간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 국자, 철판, 달고나 틀, 그리고 설탕과 소다를 넣은 통, 완성한 달고나를 보관하는 조그만 플라스틱 상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1년 전, 달고나 할머니를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다가갔다. 오랜만에 보는 달고나가 반가웠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면, 번데기, 바다 다슬기, 솜사탕, 군밤, 달고나 같은 간식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달고나를 가장 좋아했다. 설탕과 소다를 녹여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마술을 보는 것처럼 신기했다. 게다가 달달한 맛은 중독성이 있어 하굣길에 자주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달고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 지다가, 나중에는 필름이 끊기듯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 달고나를 발견하였으니 잃어버렸던 소중한 물건을 되찾은 것처럼 기뻤다.

어린아이처럼 쪼그려 앉아 할머니가 만드는 달고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달고나를 샀다. 하나에 500 원하는 달고나를 두 개를 사는데, 그렇다고 그것을 한 번에 먹어 치우는 것은 아니다. 작업실 책상 위에 놓고 그림을 그리다가 조금 떼어먹고, 휴식을 하면서도 조금 잘라먹는다. 식사를 한 후에 디저트처럼 한 조각 먹기도 한다.

달고나는 베이킹 소다를 첨가하긴 하지만 설탕으로 만들기 때문에 당 함유량이 높아 당뇨병 환자나 비만인 사람이라면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모두 정상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개 정도는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는 내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달고나는 입이 궁금할 때 조금씩 잘라 입에 넣으면 달콤함이 입안에 남아 기분이 좋고, 피곤한 것도 줄여주는 것 같다. 소화에도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언젠가 달고나를 건네주며.

“달고나가 소화 안 되는 사람들한테는 효과가 좋아요”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듯이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오래전에 병원과 약국이 없는 시골에서는 소화가 안되거나 체기가 있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소다를 복용했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적이 없었다. 달고나 장사를 하면서도 틈틈이 책을 펼쳐 놓고 읽기도 하시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노트에 쓰기도 하셨다. 자세히 보니 초보자를 위한 영어회화 책이었다.

오래전부터 공부를 해 오신 듯 제법 긴 문장들이 노트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필체가 엉성해 보이긴 하였지만 꽤 공들여 한 단어 한 단어를 채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 영어 공부 열심히 하시네요.”

할머니는 소녀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냥 심심해서요. 맥 놓고 앉아 있는 것보다 이렇게 다른 나라 말공부를 하고 있으면 시간도 잘 가고 한 문장 한 문장 알아가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어 서요.”

“아 예, 좋은 생각이시네요. 연세 드신 분이 공부하시면 치매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하더라고요.”

내가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할머니가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해외여행을 목적으로 하실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외국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목적하고는 거리가 더 멀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며 즐거움을 찾는 할머니의 깨어 있는 의식이 존경스러웠다.


어느 날 할머니에게서 달고나를 사고 있는데,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 한 명이 쪼르르 달려와서 쪼그려 앉았다.

“야 달고나다.”

아이는 새로운 것을 발견이라도 한 듯이 소리쳤다.

할머니는 작은 국자에 설탕을 한 스푼 넣고 가스불에 달구어 설탕을 녹였다. 그 위에 베이킹 소다를 조금 뿌려 부풀어 오르게 만들었다. 말캉말캉한 덩어리를 얇은 철판 위에 올려 넓고 얇게 편 후에 별, 우산, 동물 모양 틀로 꾹 눌러서 다양한 모양의 달고나를 만들어냈다.

“야 신기하다.”

아이가 달고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의 엄마인 듯한 여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침을 꼴깍 삼키며 여인을 바라보며,

“엄마 나 달고나 사줘”

말하고는 다시 시선은 할머니의 손을 응시했다.

“아니 애가 왜 이래! 이런 불량식품 안된다고 했지. 이런 거 먹으면 배어픈 것 몰라?”

여인이 단호히 거절했다.

“나 달고나 먹고 싶어. 엄마 딱 한 번만…..”

“애가 정말 왜 이럴까. 마트에 가면 맛있는 과자, 초콜릿이 쌔고 쌘데 왜 이런 불량식품을 먹겠다는 거야! ”

여인은 아이를 강제로 일으켜 세워 납치하듯 끌고 갔다.

“…… “

나는 여자의 말에 적잖이 놀라 말문이 막혔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거친 말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게 충격적이었다.

달고나를 팔고 있는 할머니의 면전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건 할머니를 얕잡아 보고 무시하는 처사였다. 할머니를 조금이라도 인격적으로 대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여자의 말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었다. 재료가 설탕하고 베이킹 소다만 사용해서 고열에 녹여 만드는 달고나를 불량식품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베이킹소다는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어 사용량 제한 없이 식품에 첨가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설탕이 당도가 높은 것은 알지만 마트에서 팔고 있는 과자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게다가 인공 색소와 방부제가 첨가된 과자가 달고나보다 위생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기분 많이 상하시죠?”

할머니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 같아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웬걸요. 이런 일로 기분상하면 세상 어떻게 살아요. ”

할머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를 보고 웃어 보이셨다. 증오나 원망이 전혀 없는 안온한 얼굴이었다.


겨울이 되었다. 뚝 떨어진 기온은 모든 것을 꽁꽁 얼려 놓았다. 심심찮게 눈이 내려 하얀 세상을 만들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방학이라 초등학교는 정적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고, 달고나를 파시던 할머니가 자리 잡고 계시던 곳은 사나운 바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외출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리어카에 종이박스를 가득 싣고 씩씩하게 끌고 어딘가로 가고 계셨다. 나는 뒤에서 밀어드릴까 생각했으나 할머니는 힘에 부치는 것 같지 않았고, 그것이 할머니를 위하는 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할머니에게서 는 배울 점이 많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밝게 살아가는 모습, 거칠고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강한 생활력,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는 근면함과 도전 정신,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해도 맞서 대립하지 않고 화를 다스리는 의연함, 이런 성숙한 자세는 돈이 많고 학식이 있다고 해서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동상처럼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리어카와 함께 멀어져 가는 할머니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봄이 되어 할머니의 달달한 달고나 맛을 볼 날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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