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운전

by 김정준




얼마 전 김포공항 인근에 있는 쇼핑몰 시네마에서 영화를 관람한 후, 귀가하느라 공항대로를 운전하고 있을 때였다.

내 앞에 달리는 승용차는 버스 전용로의 버스와 너무 밀착되어 있었다. 좀 간격을 두고 달리나 싶으면 다시 가까워 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땐 파란 차선을 침범하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라면 차선이 가물가물해서 그럴 수 있겠지만, 날씨는 뽀송뽀송할 정도로 맑았다.

어두운 밤도 아니었다. 점심 식사 후에 곧바로 관람한 영화는 오후 3시가 안 되어 막을 내렸다.

엔딩 크레디트의 시작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고, 차를 빼어 곧바로 공항대로에 진입했기 때문에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운전자가 졸고 있는 걸까?

불안한 마음에 클랙슨을 눌렀다. 허사였다. 아마도 그 음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라고 믿어 신경을 아예 끄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찌릿하며 움츠러들었다.


얼마 안 가서 승용차는 버스와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승용차와 버스는 동시에 멈춰 섰고, 그 뒤에 꼬리를 물던 차량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멈춰 섰다.

승용차 운전기사는 용수철이 튕겨지듯 내리더니 자신의 차를 확인하고는 몸을 돌려 나를 향해 걸어왔다.

꼬장꼬장해 보이는 70이 넘었을 노인이었다.

사고가 났으면 버스운전기사와 대화를 나눠야지 왜 나에게 오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머리를 갸웃했다.

아마도 노인은 자신의 과오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고, 나에게 증인이 되어달라 부탁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온 노인은 내가 차창을 내리기도 전에, 허리를 숙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을 내리자마자 봇물이 터진 듯 말을 쏟아냈다.

“뒤따라 오며 보았을 테니 사실대로 말해 주시요. 접촉사고 난 것 내가 잘못한 거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나의 동의라도 구하려는 듯 당당한 어조였으며, 자신은 조금의 잘못이 없는데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느새 버스운전기사도 다가와 노인의 옆에 바싹 붙어 있었다. 그도 빨리 사실대로 말하라는 듯이 허리를 굽히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난감했다. 분명 노인네의 잘못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편을 들 수는 없었다.

“어르신! 어르신이 잘못하셨어요. 차선을 계속 침범하셨어요.”

“예? 내 가요? …… 내가 그랬단 말이요?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노인은 머리를 계속 좌우로 갸우뚱거리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마도 차량에 설치 되어 있을 블랙박스를 확인하는 수순을 밟을 것 같았다.


주위에 알고 있는 노인들의 운전 사고가 빈번하다. 70대 중반의 친척 한 분은 승용차에 아내분을 태우고 외출하다가, 집 근처 사거리에서 비보호 좌회전을 하던 중, 반대 편에서 달려오던 차와 충돌사고를 냈다. 얼마나 심했던지 차량을 폐차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노부부는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을 뿐, 큰 피해가 없었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10년 넘게 대리운전을 하며 살아온 70대 초반의 지인은 커브길에서 가이드레일을 심하게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운전 스킬이라면 자신을 따라올 자 없다고 자부하던 분이었다. 실제로 살아오면서 미미한 접촉 사고 한 건 없던 운전 베테랑이었다.

뉴스에 보도된 내용인데, 어떤 80대 노인은 한 시장 근처에서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어, 60대 할머니와 18개월 된 어린 손녀가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다. 어느 70대 운전자는 엑셀레이터를 브레이크로 착각하고 밟아 한 상가로 돌진하여 유리벽을 훼손시키며 실내까지 침입한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 2년 후인 2025년에는 만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가 될 전망이다.

운전을 하는 노인 인구도 계속 늘어나면서 교통사고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에만 3만 건이 넘었다.


삼성화재 교통안전 문화 연구소 보고에 의하면, 70세 이상 운전자들의 교통사고 발생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80세 이상은 교통사고 위험도가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보고서에 의하면 70-74세 위험도는 16.94%, 75-79세 18.81%, 80-84세 23.18%, 85-89세 26.47%로 나이가 들수록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통사고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노인에게 급격히 증가하는 퇴행성 근시, 뇌혈관 질환, 심장마비 등이 있고, 시력이나 청력이 저하되어 외부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하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시야도 젊은 사람에 비해 절반정도로 좁아지는 것도 사고의 원인 중 하나다. 특히 노인들은 위기 발생 시 대응하는 시간이 젊은 사람에 비해 배 이상 느리니 사고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인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사망자 줄이기의 일환으로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제도가 지자체마다 시행되고 있다.

반납하는 만 70세 이상 어르신에게 서울시에서는 10만 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반납률은 2%대의 미미한 수준이다. 이런 일회성의 얇팍한 보상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 권리를 포기하는 것에 상응하는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


노인들이 운전을 해서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

생계형 운전자들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전무하다고 생각한다.

차량을 소유하고 있으면 지출되는 경비가 만만찮다. 자동차 보험과 운전자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자동차세도 내야 한다. 게다가 비싼 유류도 수시로 주유해야 하며, 소모품 교체, 정기 점검, 고장으로 인해 지출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이 돈을 합산하면 생각보다 큰 목돈이다.

이 돈이면 가고 싶은 곳 맘껏 택시를 이용해도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차가 없으면 가까운 거리는 걷게 되니 건강에도 득이 된다. 걷기에 무리인 거리라면, 65세 이상 노인에게 무료혜택을 주는 지하철을 이용하면 된다.


노인들은 왜 운전면허증 반납을 꺼려하고 운전을 고집하는 걸까?

차 없이 생활한다는 것은 분명 노인들에게 불편한 일이기는 하지만, 단지 불편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오랫동안을 함께 생활해 온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팔다리를 잃는 것과 같은 아픔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이 이렇게 저물어 가는구나 착잡한 기분이 들어 선뜻 버리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노인이 되면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생활태도가 필요하다. 버리지 못하고 품어 안기만 하는 것은 욕심이다. 욕심은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

운전을 하다가 자칫 잘못하여 인사사고라도 발생하게 되면 남은 여생은 암흑 속으로 내던져지는 것과 같다.

그건 자신의 고통일 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굵은 밧줄로 포박을 한 것처럼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버릴 것 버리고 단순하게 사는 것은 노인의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고 차 없이 사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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