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살아가기

by 김정준




노인이 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까마득한 절벽으로 내몰리는 것처럼 서글픈 일이다. 지나온 길을 단 한 발자국이라도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암울하게 만든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노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 더 마음을 아리게 한다.


보행 중에 몸이 살짝 스쳤다는 이유로 20대의 젊은이가 70대 노인을 30분 동안이나 폭행을 가해 한 달 동안이나 병원신세를 지게 했던 사건이 있는가 하면, 노인이 쳐다보았다는 트집을 잡아 젊은이가 폭력을 휘두른 사건도 있었다.

고등학교 남학생들 4명이 60대 여성 노인에게 담배를 사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순순히 응하지 않자 들고 있던 꽃으로 노인의 머리를 때린 사건도 있었다.


어렸을 때 생각에는 누구나 노인이 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예우를 받으며 품위 있게 사는 줄 알았다.

내가 자란 환경이 그렇게 믿게끔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고향에서는 노인은 마치 신과 같은 존재였다. 동네 사람들은 길에서 노인과 마주치면 코가 땅에 닿게 인사를 했고, 바삐 가야 할 일이 있어도 앞장서지 못했다. 임금을 따르는 신하처럼 몇 걸음 떨어져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옆집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항상 흰 바지저고리를 단정히 입으시고, 긴 수염을 기르신 분이었는데 손자와 그 또래의 아이들을 대청에 모아 놓고 옛날이야기를 곧잘 해 주셨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은 깎지 끼어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이야기를 듣곤 했다.

시간이 흘러 무릎이 저리면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콧등에 바르면서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대학에 다니던 70년대 초, 연로한 교수들이 몇 분 계셨다. 그들은 연세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는 데다, 모든 경륜이 응집되어 한 인간으로서 완성된 결정체 같았기 때문에 존경심이 절로 우러났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허투루 흘려버릴 수 없는 진리 같았으며, 백발의 모습이나 파이프를 물고 있는 모습은 경이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 생활이 이어지던 90년대 중반까지도 자신보다 연상인 사람을 깎듯이 예우하는 직장문화가 존재했다.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연세가 많은 분들을 공경하고 예우하는 분위기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97년, IMF 이후이다. 외환위기에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나라 발전의 주역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빙판길에 팽개쳐졌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실직당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자영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두 손들고 맨 주먹으로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 후 계속된 불황의 여파로 실직당했던 사람들이나 자영업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노인이 되었지만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무질서한 행동, 욕설, 비난, 폭행 등 반사회적 행동으로 표출되기 시작했으며, 젊은이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꼰대는 자신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학생들이 사용하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이다. (위키백과 문서)

꼰대라 불리는 노인들의 몇 가지 특징을 보면,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나이, 직위, 관록을 과시하길 좋아하며,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훈계하려 든다.

노인들이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오면서 축적한 경험이나 지식은 스마트 시대에 사는 젊은이 들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뒤처져 있다. 발 빠르게 변하는 정치상황이나 경제의 흐름에서는 더욱 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노인들은 하루라도 더 살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 낫지, 젊은 사람들이 뭘 아느냐고 우습게 알고 얕잡아본다.

나라를 대표하며 중대사를 책임지는 인물을 선출하는 선거에서도 자식이나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고령인구의 증가로 선거에서 당락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나라의 미래를 불안해하며,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향하여 투표하지 말라는 말까지 쏟아낸다.

대놓고 무식한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한심한 사람들, 부정적인 용어를 쏟아낸다. 심지어는 꼰대, 틀딱(틀니 딱딱의 준말), 같은 말로 비하한다.

지금은 한술 더 떠 틀딱충, 노슬아치란 말까지 등장했다. 틀딱충이란 틀니를 딱딱거리며 참견하는 벌레 같은 노인이란 말이며, 노인이 무슨 벼슬이라도 된 듯 행동하는 것을 가리켜 노슬아치라고 한다.


내가 노인이 된다고 해서 어린 시절 경험했던, 노인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꼰대라는 말로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하며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꼰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 구태의연한 권위적인 태도이다. 이것을 벗어던지지 않고 서는 꼰대라는 꼬리표를 잘라낼 수가 없다.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내 경험을 말하기보다 귀를 활짝 열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려 노력해야 하겠다.

나이가 든 것을 자랑으로 내세우지 않고,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며 인격적으로 대하도록 해야 하겠다.

‘나 때는 말이야,’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는 말이야,’ 혹은 ‘젊은 사람들이 뭘 알아,’ 같은 생색을 내는 말은 아예 입에 올리기조차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꼰대들의 특징 중에는 기성세대의 문화와 풍조만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고 또한 버리지 않고 서는 꼰대와 결별할 수 없는 일이다.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와 세계는 그들에겐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노인들이 그들의 문화를 천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물과 기름처럼 겉돌게 자명한 일이다.

나의 것이 중요하면 남의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다.

그 밖에도 젊은이들이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면 질책하기보다는 그건 발전해 가는 과정이라고 다독이며 포용하는 아량을 가지도록 해야 하겠다.

또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선거를 치르게 될 때는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심사숙고하여 올바른 행사를 하도록 해야 하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젊은이의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도 꼰대에서 벗어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즐겨 듣는 음악을 가끔씩이라도 들으려고 하고, 젊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카페를 찾아 분위기에 취해 보는 일도 자주 해야 하겠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읽으며 시대에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SNS를 통하여 젊은이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연극이나 영화관을 찾아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을 즐기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하겠다.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이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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