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반려견

by 김정준




집에서 팔을 길게 뻗으면 닿을 만한 지척에 규모가 상당히 큰 공원이 있다. 계절마다 새롭게 얼굴을 내밀고 웃어주는 다양한 꽃들의 해맑은 모습을 만나기 위해서 자주 찾는 곳이다. 겨울에는 심한 바람에도 끈질기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마른 잎들이나 하얀 눈에 덮인 나무가 꽃을 대신해 준다.

공원은 걷기 운동에도 제격이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나무숲과 호수가 있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환경이라서 내 집처럼 들락거리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계절과 상관없이 주인과 산책을 하는 강아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소형견부터 대형견까지 다양해 마치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제 세상 만난 듯 활보하는 것을 보면 넓은 애견 카페에 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강아지와 함께 있는 주인은 대개 젊은 남녀들이거나 중년의 부부들이지만, 가끔 노인들도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대부분이다.

노인과 함께 있는 반려견들은 놀라울 정도로 온순하다. 거리를 산책할 때 목줄을 당겨 빨리 간다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수시로 주인과 눈을 맞추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보조를 맞춘다. 그런 모습을 보면 주인이 고령이어서 행동이 굼뜨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이 짓궂은 봄바람에 화들짝 놀래어 무수한 나비로 변신해 허공을 날던 4월 초의 어느 날이었다.

나비들의 환영을 받으며 공원을 걷던 나는 한 벤치에 시선을 빼앗겼다. 고령의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는데, 품에는 짙은 갈색의 푸들이 안겨 있었다.

할머니는 연신 강아지에게 무슨 말인가를 건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눈을 맞추어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정겨워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다가가 벤치 한쪽에 몸을 맡겼다.

할머니는 품 안에 있던 강아지를 벤치에 내려놓고는,

“콩아 손, 콩아 손” 하며 자신의 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강아지는 오른쪽 발을 들어 할머니의 손바닥 위에 척 올려놓았다.

“아이고 잘하네. 우리 콩이……. 이번에는 왼손.”

그러자 강아지는 왼발을 할머니의 손에 올려놓았다.

“아유. 이쁜 것.”

할머니는 강아지를 다시 끌어안고는 어쩔 줄 몰라하시며 자신의 얼굴로 볼을 비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할머니 강아지가 그렇게도 예쁘세요?

“아 그럼요. 세상에 이렇게 예쁜 것이 어디에 있어요. 자 보세요. 얼마나 예뻐요.”

할머니는 강아지를 정면으로 세워 내가 가까이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은 반려견이 아니라 자신의 피가 섞인 손주를 자랑하는 것 같았다.


오래전에는 손주를 등에 업거나 손을 잡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동네 골목길에서도, 공원에서도, 시장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심지어는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도 손주를 데리고 가고, 경로당에 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들의 손주사랑도 예외는 아니었다. 골목길에 있는 작은 슈퍼나 구멍가게에는 과자와 장난감을 사주기 위하여 손주를 데리고 나온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훈훈한 정경은 언젠가부터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노인들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은 배우자. 자식, 손주 등 가족이다. 그러나 배우자와의 사별, 핵가족화로 가족 간의 유대관계는 멀어지고 있고, 날이 갈수록 혼자 살아가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몸이 건강하다면 밖에 나가서 운동과 취미활동을 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 건강이 나빠져 몸하나 건사하기 힘들어지면 집안에서 징역살이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요즘에는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독거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려견과 함께하면서 얻는 위로와 이로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산책을 좋아하는 강아지들과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어 건강해진다. 특히 이런 생활은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과 회복에 효과적이다

반려견으로 인해 아는 사람은 물론 낯선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게 되어 사회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반려견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감과 위안을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기만 하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반려견을 들이고 싶어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이 많다.

자녀들 양육과 교육, 결혼 후 독립까지 책임지느라 자신의 노후에 대한 준비는 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기초 노령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혼자 살기에도 팍팍한데 반려견을 들여 사료와 간식을 장만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갑자기 어디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가게 되면 한 달 생활비를 다 털어 넣어야 할 수도 있다. 심각한 병이라도 생기면 생활이 더욱 쪼그라들 것이다


사설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물 보호센터에는 매일 쏟아져 나오는 유기견을 받아들여 관리하기에 바쁘다. 시설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모두 다 수용할 수도 없다. 얼마간의 기간을 두고 관리하다 입양이 안되면 안락사시킨다. 귀중한 생명을 시설이 부족하여 강제로 끊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행위다.

안락사될 위기에 처해있는 강아지들을 외로운 독거노인에게 입양을 하는 것은 어떨까?

강아지를 죽음에서 구할 수 있고, 독거노인들에게는 가족(?)이 생기는 것이니 모두에게 윈윈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에게 지자체 동물 보호센터에서 사료와 간식, 필요한 물품과 병원 치료비용을 지원해 준다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심각한 고독사 예방에도 효과가 클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방송된 내용인데, 한 하천 산책로의 화장실 앞에 목줄이 묶여 있는 유기견을 발견했다. 동물보호협회 직원들이 출동하여 수소문 끝에 주인을 찾았는데, 단칸방에서 혼자 사시는 고령의 할머니였다. 자신은 거동이 불편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라서 더 이상 반려견을 돌볼 수 없어, 누군가가 발견하고 데려가겠지 하는 마음에서 유기를 했다고 진술하며 연신 굵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고령자는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고,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장기 입원하거나 요양시설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가족처럼 지내던 반려동물은 홀로 남겨지게 된다.

독거노인 중에는 반려견을 들이고 싶어도 자신의 사후에 홀로 남을 것이 염려되어 입양을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들이 마음 놓고 반려견과 생활할 수 있도록 지자체 동물 보호센터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되었으면 좋겠다.

관리가 힘들어져 연락을 취하면 홀로 남겨질 위기에 처한 반려견을 책임져 주는.


독거노인들 중 많은 분들이 반려견들과 행복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의 독거노인들도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로부터 지원을 받는 제도가 활성화되어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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