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노인

by 김정준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도전은 나이가 더해질수록 반비례해서 점점 줄어든다.

나이라는 괴물이 용기와 모험정신을 야금야금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도전을 젊은이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30대에선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40대만 돼도 이것저것 재느라 실천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50대엔 생각과 동시에 머릿속을 지워버린다. 60대, 그것도 중반이라면 도전이란 말조차도 묻고 살 나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밤길에 호랑이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두렵고 겁나는 나이다. 그런데 그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여류 화가 L이다.


그분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봄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였다. 내가 개인전을 하고 있을 때인데, 작품 감상을 위하여 찾았던 그분은 도록에서 내 약력을 유심히 훑어보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작가님께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예의를 갖춘 공손한 말씨였다.

“예. 그럼요.”

나는 조그만 간이 탁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여 마주 보고 소파에 앉았다.

“카탈로그를 보니 외국에서 공부하신 분이시길래……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예. 말씀하세요. 제가 아는 한 답해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자신에게는 변화가 필요해 프랑스나 이태리, 독일 중 한 나라로 건너가 견문도 넓히며 단기 코스로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분이 언급한 세 나라에 가고 싶은 이유를 물으니 머리만 갸웃거리며 말끝을 흐리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유럽 대신 미국 뉴욕으로 방향을 돌리시라 말했다. 뉴욕은 현대미술의 중심지이며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헤일 수 없이 많기 때문에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고.

더욱이나 뉴욕엔 그림 공부를 하기 편리한 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이 있는데 자격조건도 없고, 어느 때든 등록을 할 수 있으며 주 단위로 배울 수가 있어 단기 코스에 유리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전시회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후였다. 그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트스쿨에 대해서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니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응했다.

만나기로 한날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갔더니 남편분과 나란히 앉아 계셨다.

내가 추천한 뉴욕에 있는 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으로 결정했다면서 구체적으로 뉴욕 생활과 그 아트 스쿨에 관해서 궁금한 점들을 물었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자세히 설명을 해 드렸다.

그분의 남편도 뉴욕의 생활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뉴욕에 동행해 음식점에서 접시 닦기라도 하며 아내분의 뒷바라지를 해줄 거라고 했다.


그분은 두 달 동안 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한 달 동안은 여행을 하고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뉴욕에서 짧은 기간 그림을 공부한다고 해서 큰 성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뉴욕의 미술관들과 갤러리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값진 시간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림이란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발로 그리란 말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라는 말이 아닌가?


60대 중반,

편안한 삶을 위해 안주할 나이,

새로운 것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 손사래를 칠 나이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더욱이 언어소통도 자유롭지 못한 먼 나라에서 공부를 하기 위하여 도전한다는 것은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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