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리고 노인들

by 김정준




산을 흔히 종합 병원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건강에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산의 숲, 특히 침엽수, 계곡, 폭포에서 발생하는 음이온은 우리 몸의 글로불린 양을 증가시켜 면역력을 높여준다. 뇌에서 알파의 활동을 증가시켜 편두통, 불안감, 긴장을 줄여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다. 세로토닌이나 히스타민과 같은 호르몬을 감소시켜 천식, 호흡기 질환에 효과가 있다.

나무가 해충과 병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자연 항균 물질인 피톤치드는 사람들에게 상쾌함을 주며, 오염된 공기에 찌든 심폐기능을 회복시켜 준다.

산의 젖줄인 약수는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위 기능을 강화시킬뿐더러 발암물질의 농도까지 낮추어 줄 정도로 건강에 이롭다.

산은 병원에서 치료불가 판정을 받은 말기 암환자나, 병명을 알 수 없는 난치병도 상태를 호전시키는 기적을 안겨 주기도 한다.


내가 즐겨 찾는 산이 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이다. 주거지역과 인접해서 주변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젊은이나 중. 장년도 보이지만 대부분 노인들이다. 90을 넘겼을 노인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고령이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걸을 때 발을 절거나 균형을 잡지 못하여 비실거리기도 하고, 힘에 부쳐 지팡이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기는 이도 있다.

산은 높지 않고 경사가 완만하며 길이 잘 조성되어 고령이라도 힘들이지 않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노인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등산뿐만 아니라 운동기구(헬스기구)를 이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국민의 건강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주택가 주변의 산책로나 공원에 운동기구들을 설치했다. 그것도 모자라 산에까지 확장시켰다.

내가 즐겨 찾는 산에도 운동시설이 다섯 군데나 있다. 몇 백 미터의 거리를 두고 하나씩 있는 셈이다. 심지어 산 정상에도 설치되어 있어 등산 후에 이용할 수도 있다.

산에 설치된 헬스장은 노인들이 이용하기에 적합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접근성이 용이하고 꼭두새벽부터 일몰 전까지는 시간제한 없이 언제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비용이 들지 않고 복장을 갖추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실내 헬스장은 좁은 공간에 환기도 제대로 안되고, 머신들이 즐비하게 채우고 있어 답답하며, 기구 부딪치는 굉음이 끊이질 않아 신경을 쓰이게 된다. 그러나 산속에서는 자연 채광에 바람, 푸른 나무와 숲을 마주하고, 새소리를 들으며 자연 친화적인 환경 속에서 운동을 즐길 수 있다.


산에 가면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작년(2022년 9월) 신문 지상에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노인이 두 달 동안 맨발 걷기를 하여 건강이 좋아졌다는 기사가 나온 후부터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맨발로 걷는 사람이 있었지만, 기인처럼 바라볼 정도로 드물었다.

지금은 가히 맨발 걷기 열풍이라 할 정도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즐겨 찾는 산은 주말에는 중. 장년의 모습이 간혹 보이지만 주중에는 오직 노인들 세상이다.

맨발로 걸으면 흙이나 돌, 나무뿌리 같은 물질들이 발바닥을 지압해 주어 면역력이 좋아지고, 오장육부 등 모든 신체기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산에서는 노인들의 다양한 활동을 볼 수 있다. 커다란 나무에 등을 부딪치는 등치기를 하고, 계곡물에 발을 넣어 족 욕을 하기도 한다. 뒷걸음으로 걷기도 하고, 걸으며 두 팔을 앞으로 뻗어 손뼉을 치고, 뒤로 뻗어 손뼉을 치기도 한다.

이런 활동들이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건강에 좋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고, 움직여 활동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덕분에 전국에 발도장을 찍은 산들이 헤아릴 수가 없다. 설악산, 한라산은 물론 울릉도의 성인봉, 지리산까지 등정했다.

젊어서는 높고 거칠고 험준한 산일수록 매력적이었다.

지리산을 종주할 때도 차로 노고단까지 올라가서 출발하면 한결 수월한 산행이 되는데, 구례 화엄사에서 시작하여 천왕봉까지 오르는 가장 긴 코스를 택했다.

텐트에 침낭, 음식물, 버너에 코펠, 옷가지, 매트리스를 싼 배낭은 장난 아니게 무거웠다. 한나절도 안되어 어깨는 멍이 생기고 욱신욱신 아팠다. 배낭은 점점 무거워져 나를 무릎 꿇리려고 안간힘 쓰는 괴물 같았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년 가을에 설악산 대청봉을 갔다가 무척 고생을 했다. 몇 년 동안 낮은 산만 찾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몸상태가 확실히 그전 같지 않았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근력이 줄어들어 걷는 보폭이 좁아지고, 속도가 느려졌으며, 버틸 수 있는 힘이 약해졌다. 심폐기능이 저하되어 얼마 안 가 숨이 차서 휴식 시간을 자주 가져야 했다. 반사신경이 둔해져서 균형을 잃기도 하고,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허리가 뻐근하기도 했다.

몸상태가 기진맥진한 상태이니까 자연의 아름다움도 허사였다. 눈과 가슴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내려갈 걱정과 빨리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꾸고 있었다.


이제 높고 험한 산은 나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거나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오를 때 나를 힘들게 하여 오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동안 너로 인해 행복했다, 고마웠다는 말을 건네고 나도 이제 헤어질 결심을 해야겠다. 그런 마음이야 아프지만 인생사가 다 때가 있는 법이니 순응해야지 어쩌겠는가. 무리해서 찾았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손해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산이 높고 험하다고 해서 운동 효과가 있고, 등산하는 즐거움이 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체력에 적합한 곳을 찾을 때 그런 것들을 극대화할 수 있다. 다양한 야생화도 보고, 알 수 없는 나무들과 풀들이 어우러져 공존하는 모습, 팔랑거리는 나뭇잎의 떨림,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고 내려앉는 햇살,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 그 사이로 장난치며 흐르는 물, 도도하게 서서 주위를 지키고 있는 바위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신에게 알맞은 산을 찾을 때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평균 수명이 월등히 높아질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바로 산 때문이다.

어느 지역을 가도 산이 없는 곳이 없다. 대도시인 서울에도 크고 작은 산들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조그마한 나라에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산이 7000여 개나 있고, 이름 없는 산까지 합하면 수만 개가 넘으니 놀라울 정도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많은 나라의 도시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산이 없는 곳이 의외로 많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평원이거나 황무지, 사막이 펼쳐지는 곳도 있었다.

내가 7년 가까이 살았던 런던이나 뉴욕도 산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산은 고사하고 언덕조차도 없는 평지였다. 산에 가려면 마음먹고 몇 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했는데 그렇다고 산 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어디를 가나 산에 둘러싸인 천혜의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산은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옷이 단정한 사람이나 남루한 사람을 편가르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몸이 불편한 노인이라고 길을 막지 않는다. 언제나 두 팔 벌려 품어준다.

이런 너그러운 산들이 가까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산에 가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고 기피하는 노인들이 많다.

모든 노인들이 산과 친구가 되고, 놀이동산처럼 맘껏 즐겨야 한다.

산과 가까이하면 할수록 건강이라는 선물을 점점 크게 안겨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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