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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Jun 05. 2024

비밀의 정원




가끔은 뒤얽힌 실타래 같이 복잡한 머리를 마디마디 풀어 정리하고 싶을 때 찾는 곳이 있다. 

가끔은 누구의 간섭 없는 호젓한 곳을 거닐며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찾는 곳이 있다. 

가끔은 사람세계를 떠나 자연과 대화하고 그것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위로받고 싶을 때 찾는 곳이 있다.

나는 그곳을 비밀의 정원이라 부른다. 

원래 정원이란 집이나 성, 궁전 안 밖에 가꾸어 놓은 뜰이나 꽃밭을 말하지만, 내 비밀의 정원은 그런 곳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물론 그곳은 나의 소유가 아니어서 내 손으로 나무 한 그루를 심거나 꽃씨 한 알 뿌린 적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가 사적으로 소유하고 가꾸는 곳도 아니다.

 

비밀의 정원을 발견한 것은 10년 전이다. 지금 살고 있는 한강이 인접한 아파트로 이사를 한 이후이다. 

봄이 무르익던 어느 날, 봄볕의 유혹에 이끌려 집을 나선 나는 한강변 산책로를 따라 한없이 걸었다. 

바다처럼 푸르고 너른 한강은 떨림 같은 잔물결이 일고 있었고, 원래 겨울 철새였으나 텃새화되어 계절 상관없이 흔히 볼 수 있는 청둥오리들이 군데군데 물 위에 떠있었다. 

 

시원하게 끝없이 뻗어 있는 자전거 전용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봄의 향기가 물씬 배인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의 페달을 경쾌하게 밟고 있었다. 사이클복에 그대로 드러나는 허벅지와 종다리는 물이 오른 나무처럼 탄탄해 보였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 왈츠 스텝처럼 가볍고 율동적이었다.

부드러운 햇살과 살랑거리는 바람을 맘껏 흡입한 몸이 가벼워 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산책로를 따라서 40여분을 걷던 나는 한강변에 넓게 자리 잡은 녹지대를 발견했다. 

한강에 놓인 다리를 건널 때마다 먼발치서 보아왔던 곳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가까이 와 본 적은 없었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그곳을 향했다. 녹지대에는 사이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주로 흙을 깔아 놓은 길이었지만, 어느 곳은 목재처럼 보이는 합성 데크가 깔려 있었고 다리도 세워져 있었다. 

한강과 맞닿은 한 지점에는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가 보호색으로 위장되어 숨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녹지대는 자생적으로 자라난 숱한 나무들과 꽃풀들로 채우고 있었다.

봄이 무르익는 시기라서 나무와 풀들은 앞다투어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나는 꽃의 종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해 왔는데 이곳에서 만나는 것들은 낯설거나 전에 본 적이 있더라도 이름을 숙지하지 못한 것들 뿐이었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시에서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고 했는데, 나도 열심히 이름과 색깔, 모양을 알아야겠다 고 다짐했다. 


거대한 녹지대는 처음 방문한 곳이었지만,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조용하게 거닐 수 있는 것도 특별했다.

나는 이곳을 비밀의 정원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 후로 나는 비밀의 정원을 가끔씩 찾았다. 계절을 가리지도 않았다. 안개가 자욱한 날도,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도, 햇빛 쨍쨍한 날도, 비가 내리는 날도,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가을날에도, 서리가 하얗게 내려 누워있는 날도, 심지어는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버린 날에도...

내가 찾아오면  갖가지 나무들과 꽃들, 그리고 풀들이 손을 흔들며 맑은 미소로 반겨준다. 겨울에는 마른나무들과 생명을 잃은 메마른 갈대숲이 반겨주지만,

 

나의 비밀의 정원에는 특별한 식물이 없다. 자연적으로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람들의 손에 의해 가꾸어지는 정원이라면 이곳에 있는 들은 아예 발붙일 수조차 없을 것이다. 쓸모없는 것이라고 모두 제거되었을 테니까.

 

비밀의 정원을 산책할 때면 기분이 좋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무들과 꽃그리고 풀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재잘거리고, 

세찬 바람에는 서로 버팀목이 되어 손을 잡아주고, 

장대비가 내리면 큰 잎사귀의 나무들과 풀들이 우산이 되어 작은 것들을 보듬어주고, 

햇빛 강한 날에는 그늘을 만들어 보호해 주고, 

서로 좁다고 투덜대거나 불평 없이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어우러 사는 모습이......

 

비밀의 정원을 산책할 때면 자연스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은 왜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기회만 되면 남을 밟고 위로 올라서려고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남을 이유 없이 미워하고 시기, 질투를 하며 마음에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심어주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끝없는 욕구로 자신의 영역을 넓게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풀리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구 지어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자신만 화려한 주인공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모든 나무들과 , 그리고 풀들이 저마다 주인공이 되는 곳.

서로 어울리며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

그래서 비밀의 정원을 찾아 산책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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