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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May 15. 2024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우리는 사람들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생활수준이나 문화 수준, 교양, 지적 능력까지도 넘겨 짚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수박을 처음 본 사람이 겉만 보고 안다고 하는 것이나 같다. 속은 빨간색에 달고 아삭하며 풍부한 즙이 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사정과 지적 수준에 상관없이 외모를 번드르르하게 치장하고, 부족한 내면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도 한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는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을 위험천만한 일이다.

 

1880년대 초에 있었던 하버드 대학교의 총장과 스탠퍼드 설립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탠퍼드는 금광과 철도사업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재벌이었으며,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지낸 인물이었지만 옷차림은 항상 지나칠 정도로 검소했다.

외아들이 하버드에서 1년을 공부하고는 장티푸스로 사망하자 부부는 전 재산을 하버드에 기증하기로 결정하고 학교를 방문했다.

총장을 만나러 왔다는 스탠퍼드 부부의 말에 정문수위는 물론 총장의 비서까지 행색이 초라한 그들을 문전 박대했다. 가까스로 총장을 만났으나 그 역시도 부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귀찮다는 듯이 응대했다.

하버드 대학교를 진정으로 사랑한 아들의 이름으로 건물을 지어주고 싶다고 하자, 총장은 건물 짓는 것이 얼마나 막대한 돈이 소요되는지 아냐며 대놓고 무시했다.

기분이 상한 스탠퍼드 부부는 기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서부 캘리포니아에 직접 대학을 설립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이다.

이 이야기가 실제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가공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널리 화자 되는 이유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때의 일이다. 70년대이니 꽤 오래전이다.

같은 과 학생 중에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항상 낡고 헐렁한 청바지에 후줄근하게 보이는 셔츠나 남방, 잠바를 걸치고 다녔다.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답지 않게 옷 색깔도 따로 놀았다. 더 특이한 것은 싸구려 흰 운동화 뒤꿈치를 꺾어 신고 다닌다든가 어떤 때는 흰 고무신을 끌고 나타나기도 했다. 게다가 양말은 신지 않은 날이 많았다. 머리도 말린 옥수수수염처럼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해 보였고, 얼굴은 로션도 바르지 않는지 바위 표면처럼 거칠어 보였다. 그야말로 가난에 찌든 티가 물씬 풍기는 친구였다.

 

대학시절은 젊음이 활짝 피어나는 시기다. 물론 신체적 성장으로 볼 때도 정점을 찍는 시기이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공장에서 찍어낸 생산품처럼 살다가 나름대로 개성을 찾아 자신의 멋을 한껏 뽐내는 시기이다.
학생들은 옷가게에 기웃거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책을 보는 것보다는 거울을 보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으레 후줄근한 옷차림, 게다가 가꾸지 않는 머리와 얼굴을 한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측은해서 가는 한숨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그도 남들처럼 멋을 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할 텐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괴로워할 것 같았다.

나는 그 친구에게 좀 더 다가서려 노력했다. 음료수를 사면 하나 더 샀고 점심을 먹으려 가서는 음식값을 지불하기도 했다.
강의가 끝나고 술을 마실 때도 그 친구의 몫은 내가 지불했고, 어느 땐 그 친구가 맥주 한 잔 하자면서 앞장섰고 자신이 돈을 지불하려 했지만 나는 기를 쓰고 그를 밀쳐내곤 했다.
실기 시간에 재료를 제대로 준비해오지 않은 날은 내 것을 사용하라고 건네주기도 했다. 환경이 어려운 친구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일 학년 첫 학기, 종강을 코앞에 둔 어느 토요일( 5일제 시행 전) 강의가 끝나고 그가 다가오더니, 오늘이 자신의 생일 이라면서 자기 집에서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했다.

솔직히 가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지만 없이 산다고 무시하나 생각할 것 같아서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나는 친구가 집으로 오라고 한 시간에 맞춰 가는 길에 마켓에서 캔맥주와 소주 그리고 안줏거리를 충분히 샀다. 어쩌면 라면으로 저녁을 때울 수도 있을 텐데 술판이라도 제대로 벌려야 할 것 같았다.


친구가 알려준 주소의 집을 찾았다. 거기에는 초라한 집이 있어야 하는데 성벽 같은 담장과 육중한 대문이 버티고 있었다. 집을 잘못 찾았나 했지만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주소와 대문 옆에 걸린 문패의 주소는 일치했다.

주춤거리다 초인종을 누르자 친구가 받았고 육중한 대문이 열렸다.

구미호에게 홀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왔다.

대문을 들어서 돌계단을 오르자 잘 가꾸어진 정원이 나타났다. 넓은 잔디밭에는 크고 작은 조경수들이 보기 좋게 서 있고 길을 따라서 만개한 수국 꽃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자 거대한 성 같은 저택이 나타났다.

현관 앞에 나와 있던 친구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실내는 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골동품들이 여기저기에 진열되어 있고,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 잘 나가는 현역작가들의 대형 그림들이 거실과 복도 곳곳에 걸려있었다.

 

친구의 방은 2층에 있었는데 학교 교실만큼이나 넓었다. 방안은 책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 책상, 침대, 외국제품의 전축과  TV가 적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재벌 집 자녀의 방 그대로였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친구의 겉모습을 보고 속단했던 것어이없어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친구는 잘 나가는 회사 오너의 외아들이었다.

 

그 후로부터 나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

친구로 인해 얻은 확실한 교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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