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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17. 2022

뿌리 깊은 나무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내가 직장에 몸담았을 때 모셨던 세 분의 선생님과 산행을 하고, 식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분들과 함께할 때 가장 많이 입에 오르는 화제는 자식에 관한 것이다. 취업과 승진, 그들로부터 받은 선물, 용돈, 그리고 외식, 함께한 여행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룬다. 하도 들어서인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의 자녀분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살아온 것처럼 훤히 꿰뚫고 있을 정도다.


원래 모임을 함께했던 선생님은 네 분이었다. 한 분은 7년 전부터 함께하지 못하고 계시다. 제일 건강하셨던 분이시다. 체구도 네 분 중 가장 좋으셨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하셨다. 산에 오를 때는 항상 앞장서 훨훨 날다시피 하셨고, 식사를 왕성하게 하셨으며 술도 고래급이었다. 

그분께서는 유난히 자식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해줬는데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재벌 그룹에 입사했다. 동료 중 가장 먼저 승진했다. 중요한 부서 책임자가 되었다. 이 같은 이야기를 할 때면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으며, 오직 자신만이 훌륭한 아들을 둔 것처럼 어깨에 힘이 한껏 들어가 있었다. 그런 그의 당당한 모습은 뿌리를 깊게 내린 거대한 나무와도 같아 보였다.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끄떡도 하지 않을......   


7년 전이다. 그분의 아들에게 일이 생겼다. 회사의 핵심 기술 자료를 빼내 해외에 유출시킨 것이었다. 너무나 큰 비리라서 구속 수감되었다. 

아들만이 삶의 희망이셨던 선생님께 그 사건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무너져 내렸고 회복되지 못한 채 얼마 후에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당당하시고 뿌리 깊은 나무 같으셨던 분이…….


아들은 몰랐을까? 아버지는 자신의 뿌리라는 것을. 자신의 잘못이 뿌리를 흔들고, 병들게 하고, 썩어 생명을 다 할 수도 있게 만든다는 것을……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 때문에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어깨를 펴고 살기도 하고, 온갖 고통을 다 짊어진 것처럼 풀이 죽어 살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모임을 함께하는 세 분 선생님이 연세에 걸맞지 않게 건강하시고 넉넉한 마음을 지니신 것은 전적으로 자식들이 좋은 생각과 올바른 행동으로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그분들이 오래오래 뿌리 깊은 나무로 있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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