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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17. 2022

산, 그리고 친구


 

산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우리나라에 그의 발길이 닿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산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야.
산은 어머니이고 스승이야.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가 젊어서부터 산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눈길을 준 적도 별로 없었다. 어쩌다 친구들 등쌀에 못 이겨 산을 찾게 돼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걷는 것이 성가시고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걸맞은 친구가 없고 산행 후 한 잔 걸치는 시간이 없다면 그는 아예 산과 담을 쌓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산과 가까워진 것은 십여 년 전 일이다. 
잘 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가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은행 대출에 사채를 내어 다시 세워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터진 봇물을 두 주먹으로 틀어막는 것처럼 무모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의 무게와 좌절감은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 끝내는 그를 쓰러뜨려 놓고 말았다.  
그에게는 깃털만큼의 희망이 없었다. 
그에게는 손톱만큼의 삶에 대한 애착도 없었다. 

심각한 상처를 입은 짐승처럼 몸부림치며 굵은 눈물만 쏟아냈다. 
괴로움을 잊기 위하여 밤이나 낮이나 술병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내가 옆을 지키며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고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어느 봄날 그는 집을 나섰다. 몇 달 만의 외출이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 내린 곳은 한적한 산이 있는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싶었다.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산에 오르던 그는 다리에 힘이 빠지며 주저앉았다. 

가까이 있는 큰 돌에 등을 기댔다. 눈까풀이 스스로 닫혔고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누군가가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 같은 느낌에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나뭇잎 사이로 날아온 따사한 햇살이었다.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럽고 따스했다. 

주위를 훑어보았다. 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고 나뭇잎들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며 자신을 향해 무슨 말인가를 끊임없이 건네는 것 같았다. 커다란 나무들은 걱정스럽게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너무나 포근했다.
너무나 평화스러웠다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했다. 


그런 일을 경험한 후, 그는 수시로 산을 찾았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그 과정을 거듭해도 멈추지 않았다. 
산은 언제나 말없이 그를 안아주고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는 심한 바람에 가지가 잘리어도 꿋꿋하게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가는 나무를 보면서, 추운 겨울 하얀 눈에 덮어쓰고 있으면서도 불평 없이 시련을 이겨 내는 어린 나무들을 보면서,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 시작했다.
 
그는 10여 년간 열심히 일을 해온 덕에 은행 대출과 사채에서 거의 벗어나고 있다. 빚에서 완전히 해방되면 강원도 삼척 인근 깊숙한 산에 들어가 살 계획이다. 이미 집을 지을 부지를 확보했고 설계도 마친 상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어서 그가 자유로운 새처럼 훨훨 산으로 날아가 둥지를 틀고, 산신령과 친구 하며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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