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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17. 2022

까치집

                                                                       


내 유년 시절을 보낸 시골집 앞마당 가에 하늘을 닿을 듯한 미루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꼭대기에는 나무의 거대한 열매처럼 까치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바람이 심했으며 눈이 많이 내렸으나 까치집은 용하게도 그런 시련을 잘 견뎌냈다. 여름철 태풍이 지나갈 때면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져 땅바닥에 나뒹굴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까치집은 언제 그런 일을 겪었느냐는 듯이 멀쩡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까치는 집을 지을 때 기초작업에 여간 신경 쓰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몸보다도 더 긴 나뭇가지를 촘촘히 걸쳐 단단하게 기초를 잡고, 그 위로 서로 맞물리게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끼어넣어 견고하게 쌓아 올려 집을 만들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었다.  


생뚱맞게 유년시절의 까치집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한 지인의 아들 때문이었다. 6년 전에 대학을 졸업한 지인의 아들은 직장을 잡을 수 없게 되자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인터넷 쇼핑몰을 시작하더니 본전까지 다 날렸고, 인테리어 사업도 흐지부지 손 털고 말고, 카페를 한지 얼마 안 되어 또 문을 닫았다. 자영업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준비 없이 뛰어든 게 화근이었다. 


원래 지인은 건장한 체구에 호쾌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그동안 몰라보게 수척해지고 웃음이 있던 얼굴엔 근심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들 생각하면 입맛이 십리는 도망가 버리고 밤에 잠도 오질 않는다고 했다. 

노후를 위해 준비했던 여유자금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살고 있는 아파트마저 대출금으로 깡통 집이 되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연속되는 사업의 실패로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고 했다. 


부모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인의 아들은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차를 몰고 지방에 내려가 차 안에 연탄 불을 피우고 자살을 기도했다. 다행히 인근 주민이 발견하여 목숨을 건졌지만, 지인은 그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 소동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한동안 무기력하게 시간만 흘려보내던 지인의 아들은 기지개를 켜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이태리 음식점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접시 닦기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훌륭한 요리사가 되어 자신의 레스토랑을 가지는 게 목표란다.                                   

나는 그가 서두르지 말고 까치가 집을 짓듯이 기초를 확실히 다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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