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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17. 2022

여자, 아내, 엄마, 여자



H 백화점 VIP 고객이 되어 2년 동안 호사를 누렸다. 백화점 스카이라운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는데, 세련된 직원들이 음료를 제공해주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책이 구비되어 시간을 때울 수도 있고, 안마기도 설치되어 몸을 풀면서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있었다.  승용차는 시간 구애받지 않고 주차장에 얼마든 주차할 수 있었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는 과일 바구니, 곶감세트 등 다양한 선물을 제공해 주고, 내 생일에는 케이크, 와인 등을 선물했다. 


집사람이나 나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소비가 심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검소하고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VIP 회원으로 선정된 이유는 오래된 가전제품과 가구를 하나 둘 개비하다 보니 목돈이 들어갔고, 두 딸애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사 주었기 때문이다.

다달이 날아오는 명세서를 보면 아내와 나를 위해 구입한 물품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눈에 띄었다. 


아내는 백화점을 둘러볼 때면 마네킹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진열된 옷의 가격표를 보면서 세상에…… 세상에…… 이럴 수가…… 이런 옷은 도대체 누가 사 입는 거야? 입을 벌리고 머리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러면서도 딸 애들이 이 옷 예쁘다. 이 가방 예쁘다. 한마디만 하면 그래 너한테 잘 어울리겠다. 하면서 여유 있는 사람처럼 떡하니 사준다. 


아내는 처녀 적 나름대로 유행을 따르고 멋도 내는 생활을 하였으나 결혼 후에는 치장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을 모아 집을 넓혀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유행과 멋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자신을 위한 옷은 사지를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사게 되더라도 저가 브랜드 매장이나 상설 할인 매장에서 사는 게 고작이었다. 아내는 변변한 외출복 하나 없다.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여인이 아들을 의과대학에 보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라 뒤치다꺼리가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쓸데 못쓰고 절약에 절약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입성은 으레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옷으로 해결했다. 

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걸맞은 여자와 결혼을 했다. 여자도 직장생활을 했기 대문에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백화점에 자주 쇼핑을 하러 갔다. 그런데 자기들 것만 사 올뿐 여인의 

것은 없었다. 어버이날이나 생일날엔 제대로 된 옷 한 가지는 사 오겠지 기대했는데 허사였다. 자식 위해 희생한 대가가 이런 것인가 야속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는 안 되겠다 싶어 입고 있는 낡은 옷을 흔들어 보이며 서운한 속내를 드러냈다. 

아들 부부는 그다음 날 옷을 사 왔다. 그런데 이게 왼 일인가 시장에서 싸구려 옷을 사 온 것이었다. 실망감을 억누르며 이런 옷을 사 온 이유를 물으니 아들이 말하길, 어머니는 백화점 물건이나 비싼 옷은 절대로 입지 않고 야단만 치실 게 뻔해 저렴한 것을 사 왔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여자다. 좋은 옷 입고 모양내고 싶지 않은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아내도 매 한 가지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희생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딸애들은 엄마의 그런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까? 나중에 제 엄마에게 옷을 선물할 때,

“우리 엄만 상설 할인 매장에서 파는 옷 밖에 안 입어.” 하면서 그곳에서 사 오지는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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