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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Jun 21. 2023

변화와 도전




“현재로부터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돛의 밧줄을 풀어 던져버리고 안전한 항구를 떠나 멀리 항해하세요. 당신의 항해에 무역풍을 가득 담으세요.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세요.”

ㅡ마크 트웨인 (Mark Twain)ㅡ


2000년 밀레니엄을 코앞에 둔 1999년,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말처럼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만이 아니라 아내와 두 딸도 함께하는 도전이었다.  

그동안 나는 가족과 함께 잔잔한 강물에 안전한 배를 타고 유유히 흐르는 밋밋한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다. 이제는 더 큰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서 강이 아니라 바다로, 그것도 아주 멀리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나와 가족이 탄 배는 급류가 심한 계곡을 통과해야 할지도 모르고, 문득 아찔한 폭포가 눈앞에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거센 파도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1999년, 큰애는 중학교 2학년, 작은애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2년 전,  IMF 사태 이후 나라 경제는 심각할 정도로 휘청거리고 있었고, 가정의 삶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교육 열풍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번 불이 붙으면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았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특목고에 진학을 준비하는 중학생들이나 초등학생들도, 방과 후에 학원이나 과외 교습소에서 공부를 하느라 해가 지는지 달이 뜨는지 모르는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라고 손 놓고 편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입학 후 다른 학생들과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 선행 학습에 매달려야만 했다. 


아내와 나는 여전히 큰애를 사교육의 장으로 밀어 넣지 않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큰애의 학교 성적을 보면 흥미를 가지고 있는 과학이나 역사, 그리고 영어는 꽤 만족할 만한 점수였다. 하지만 국어나 수학 과목은 그저 그런 말 못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미진한 과목을 보충하기 위해 과외를 시켜볼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기도 했지만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말을 냇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학원이나 과외에 보낸다고 해서 학습효과가 크게 향상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작은애는 유치원 다니기 전부터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였었는데 지금도 여전했다. 아니 이제는 노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방법을 터득하여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작은애는 사회성이 좋아 주위에 항상 친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함께 어울려 학교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놀았고, 그것도 모자라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로 장소를 옮겨 놀이기구와 모래 장난에 신바람이 나 있었다. 친구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우리 집으로 불려드려 집안이 시끌시끌할 때가 빈번했다. 


1999년, 나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중대 결정을 했다. 20년 동안, 아니 정확히 18년 동안 몸담았던 학교에서 명예퇴직을 한 것이다. 20년 이상 근속한 교사에게 자격이 주어졌는데, 군대 생활을 2년의 경력으로 인정해 주어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나는 졸업과 동시에 서울의 한 사립 중학교에서 미술교사 생활을 시작했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말하는가 하면,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나는 전자도 후자도 아니지만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18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버렸으니 말이다.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작품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룹전에 참여해 왔고, 개인전도 몇 차례 가졌다. 독일과 덴마크에서 해외 전시도 했다. 

그런데 묘한 일이었다. 작품 활동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부족한 것을 느꼈고, 그것을 채우고 싶다는 욕구가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은 바로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과 런던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 꿈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듯 커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로 있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토니 로빈스(Tony Robbins)의 말처럼 이제는 변화를 위해 이런 미온적인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이제는 꿈을 좇아 도전을 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아내도 교직경력이 20년이 되어 명예퇴직을 할 수가 있었다. 

아내는 어렸을 때 해외로 유학을 가서 영문학을 전공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택시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장인)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꿈을 접어야 했다. 아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 국내서라도 영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그것마저도 힘든 상황이었다. 빨리 돈을 벌어 집안을 도와주어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학비가 저렴하고 2년(80년대 초부터는 4년제가 됨)만에 졸업할 수 있는 교육대학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는 아내는 해외에 나가면 정규 학위과정은 밟지 못하더라도, 랭귀지 스쿨에서 체계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해외로 떠나기로 결정하였을 때, 나는 오래전부터 바랬던 꿈이 이루어졌다는 기쁨 보다도 두 딸이 사교육과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기쁨이었다.

두 딸이 우리나라에 계속 있게 된다면 언제까지나 사교육 열풍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학교 까지는 그럭저럭 견딘다 하더라도 고등학교에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두 딸이 사교육에 뛰어들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을 해치며 노력한다 하더라도 명문대는 고사하고, 서울에 있는 비인기대학도 입학을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외국에 간다고 해서 두 딸이 아무런 노력 없이 대학문이 쉽게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학습을 해야 하고, 전혀 다른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일단은 사교육 열풍과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큰애는 언제부터 인가 외국생활을 동경하고 있었다. 1년 전(1998년)에 뉴욕을 비롯하여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을 여행을 했던 영향 때문인 것 같기도 했고,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손에 달고 살았던 먼 나라 이웃 나라라는 책의 영향 같기도 했다. 어떻든 큰애는 외국에 가는 것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문제는 작은애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 너무 어렸다. 그런데 언어 학자들에 의하면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학습하기에 적합한 나이가 9세를 전후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원어민 같은 발음이 가능한 시기라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작은애가 외국에 가는 것이 적기 같기도 했다.


명예퇴직을 6개월 앞두고 나는 공부하고 싶은 뉴욕과 런던에 있는 대학교에 지원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었고, 각 대학교로부터 요구하는 영어시험(미국은 TOEFL, 영국은 IELTS) 점수를 확보하면 받아주겠다는 조건부 입학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이제 할 일은 랭귀지 스쿨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뉴욕과 런던은 대도시인만큼 랭귀지 스쿨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일단 몇 군데를 선별해서 비교해 보니 런던이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아내와 나는 랭귀지 스쿨은 런던으로 결론을 내렸다. 학비가 저렴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는 바와 같이 뉴욕은 거대하고 복잡하며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이다. 그만큼 위험요소들도 도사리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런던도 대도시이긴 하지만 뉴욕에 비해 작았고, 덜 복잡했으며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가진 도시이다. 뉴욕으로 직행하는 것보다는 런던에서 적응훈련을 한 다음에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았다. 


나는 런던에 있는 한 랭귀지 스쿨을 지원했고, 열흘 만에 입학 허가서를 받았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우리 가족은 영국 런던으로 떠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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