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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Oct 04. 2023

내 친구, S (2)


 

 

 

9. 11일 테러 후, 뉴욕과 워싱턴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모든 사람들은 비탄속에 빠져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앞으로 또 무슨 일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음 졸이고 있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고 했다.

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청맹과니 같을지라도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아내와 나 갤러리 장소 물색 계속고 있었다. 테러로 붕괴된 무역센터 쌍둥이 타워가 있던 남쪽을 피해 맨해튼의 다른 지역을 둘러보았고, 롱아일랜드를 다시 방문하여 낫소 카운티에 있는 타운들을 여러 군데 답사했다. 그곳에서는 쉽게 장소를 구하겠지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위치가 좋은 곳은 이미 갤러리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비어 있는 곳이나 임대로 나와있는 상가를 발견할 수 없었다. 

 

친구 S 도 갤러리 장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나서기도 했지만, 센추리 21이라는 체인점을 많이 거느린 부동산 사무실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적합한 장소를 알아봐 달라고 의뢰한 상태였다.

 

친구 S와 나의 만남은 간간이 이어졌다. 그가 차를 운전해 맨해튼 57번가에 있는  아트스쿨 앞에서 나를 픽업하여 주위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퀸즈 지역 플러싱에 위치한 소문난 한식집들을 찾곤 했다. 

친구는 나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불안할 정도로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이것저것 지시를 하기도 했으며, 직원들로부터 보고를 받느라 우리의 대화는 끊기 일쑤였다. 그의 몸은 나를 만나고 있었지만, 마음은 일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싶었다.

“난 네가 가장 부러워.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면서 사니 말이야. 나도 그림을 다시 하고 싶다. 고갱처럼 풍광 좋은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 틀어 박혀 아름다운 자연을 맘껏 화폭에 담고 싶다. 햇빛 잘 드는 거실이나, 시원한 바닷가에 차양 넓은 파라솔을 펼쳐놓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책들을 맘껏 읽고 싶기도 하고……”

친구 S는 꿈을 꾸듯이 지그시 눈을 감고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노랑. 주황, 다홍, 빨강 옷을 갈아입고 한껏 으스대던 나무들은 거친 가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옷을 벗어던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나무들의 옷 조각들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친구 S는 여전히 나를 찾아오곤 했지만, 전에 비해서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만날 때마다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핏기를 잃고 가무잡잡하게 변해 있었고, 입술은 물집이 생겨 터져있기도 했다. 

맛집을 찾아 맨해튼, 플러싱, 뉴저지에 있는 유명한 일식집이나 맛깔스러운 한식집을 찾곤 했지만, 음식이 나오면 젓가락으로 휘젓기만 할 뿐 입으로 가져가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만 일에서 손을 떼고 휴식시간을 가져. 너무 피곤해 보여.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여. 네가 아니면 회사가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버리고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겨놓고 뒤로 물러서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그가 안쓰러워 진정 어린 충고를 했지만, 그는 그저 힘없이 웃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한동안 친구 S로부터 연락이 없었다. 아마도 회사 일이 바쁘거나 해외출장 때문인지도 몰랐다. 한국에 직영으로 운영하는 회사나,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거래처가 있는 홍콩, 중국, 필리핀 태국을 일 년에 한두 번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궁금해서 친구 회사를 방문하든가 아니면 전화를 해볼까 생각을 했지만 누가 될까 봐 포기했다. 그러고 보니 뉴욕에 정착한 후 친구에게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 수시로 연락을 하고 나를 만나기 위하여 찾아왔으니 그럴 필요 없었을뿐더러, 항상 바쁘고 피곤한 사람에게 잠시라도 시간을 뺏고 싶지가 않았다. 그의 사무실을 몇 차례 방문한 것도, 전화 통화를 할 때 미리 약속 날짜를 잡아 놓았다가 실행에 옮겼었다.

 

아내와 나는 열심히 발품을 팔고 다닌 덕분에 드디어 눈에 확 띄는 상가를 발견했다. 스포츠 의류를 파는 곳인데 고별세일을 하고 있었지만 조만간에 문을 닫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왕래도 끊이지 않고, 크기도 알맞았으며, 그 주위에 갤러리도 없었다. 

이제 남은 일은 친구가 와서 둘러본 후 결정을 내리고, 건물주와 계약을 체결하면 상가구입은 매듭짓게 되는 것이었다.  

 

친구 S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뉴욕에서 살면서 내가 그에게 연락을 취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갤러리 장소에 대해 알려줘야 할 것 같아 그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전원이 꺼져 있었다. 회사로 전화를 했으나 해외 출장 중이라는 답이 날아왔다. 

어느덧 3월 중순이 되었다. 코끝에 와닿는 바람도 차갑지 않고 한결 부드러워졌다.  

친구 M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학 동기동창이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의 한 아트 스쿨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광고회사에 근무하다 퇴사하고 지금은 아내와 함께 네일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S가 죽었어!”

수화기를 들자마자 친구 M이 한숨과 함께 토해낸 말이었다.

“뭐? 어이없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자.”

그의 말에 퉁명스럽게 응대했다.

나는 친구 S에게 사업상 중대한 일에 봉착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단 한 번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었다.

“…….”

친구 M은 대꾸 없이 한숨과 함께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그날이 네일 가게 쉬는 날이라 S에게 안부전화를 했단다. S의 아내가 받았는데 하는 말이 일주일 전에 친구는 세상을 떠났고 나흘 전에 장례식을 치렀다는 것이었다. 

친구 S가 세상을 떠나기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면회사절이어서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세상을 떠난 후에는 경황이 없기도 했지만, 조촐하게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느라 아무에게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M이 운전하여 친구 S가 묻혀있다는 공원묘지를 향해 달려가는 차 안에서도 나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거짓말 놀이에 놀아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제발 거짓말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뉴저지에 위치한 조지 워싱턴 메모리얼 파크 공원묘지 앞에서 기다리던 친구 S의 아내가 우리를 보자 눈물부터 보이며, 무덤 앞으로 인도했을 때서야 그의 죽음이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무덤은 아직 잔디 입혀지지 않았고, 비석도 세워지지 않은 채 붉은 흙만 드러내놓고 있었다. 

 

친구 아내의 말에 의하면 일 년 전부터 친구는 간이 나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고 했다. 주치의는 간염이라며 자기 손으로 완쾌시킬 수 있다고 장담하며 거기에 맞는 약을 처방해 주어 계속 복용해 왔단다. 

더욱이나 주치의는 한국사람으로 그것도 친구의 고등학교 선배여서 그의 말을 100% 신뢰했었다 한다.

그러나 주치의 말과는 다르게 친구의 건강상태가 더 악화되자 3개월 전에 다른 병원 전문의를 찾았는데, 암 말기로 판명받았단다. 암세포가 주위 장기로 전이되어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단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사라는 것을 친구의 죽음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50이 안된 나이에 이렇게 황망 떠날 줄은 진정 몰랐다.

나는 가지고 온 꽃다발을 친구의 묘 앞에 놓고 눈을 감다.

친구와 같이 했던 순간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뉴욕에 정착하기 전 여행을 올 때면 바쁜 와중에도 공항까지 와서 픽업을 해주고 여기저기 길안내를 해주던 자상한 친구.

내가 뉴욕에 정착한 후에도 도움을 주려고 무던히 애써주던 친구,

거대한 사업장을 보여주며 담담하게 지난날의 생활을 들려주던 친구.
  
이제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를 떠내 보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말했던 대로 풍광 좋은 따뜻한 섬에서 맘껏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고 화폭에 아름다운 풍경을 담기를 간절히 비는 것뿐이 없었다.

잘 가!

내 친구.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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