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여인을 만드는 마술사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아델 블로흐 바우어 1세의 초상화) 1907
구스타프 클림트는 마술사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요술쟁이다.
그가 그려낸 여인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화려하고,
너무나 고고하고,
너무나 우아하며,
너무나 당당하고,
너무나 사랑스럽다.
여인들이 입고 있는 장식적이고 환상적인 의상은 오직 한 여인만을 위하여 클림트 자신이 재단하고, 무늬를 디자인해서 황금색과 화려한 색을 입혀 놓았다.
많은 여성들이 클림트를 좋아한다.
많은 여성들이 그의 그림을 좋아한다.
바라만 보아도 좋고,
바라만 보아도 황홀하고,
바라만 보아도 마음 설렌다.
그가 그려낸 여인들의 그림을 보면서 자신이 그림 속의 주인공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기도 할 것 같다.
Gustav Klimt, 키스(The Kiss), oil on canvas, 108x180cm, 1907 - 1908
많은 여성들이 클림트의 작품 중 키스를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는다.
클림트 하면 키스가 연상되고, 키스하면 그가 떠오를 정도이니까.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혼심을 다해 완성시켰다는 키스.
꽃이 흩뿌려진 초원 위에서 남자는 여자를 소중하게 감싸 안고 열렬한 키스를 하기 위해서 여자의 입술에 점점 접근하고 있다.
여자는 황홀한 표정으로 두 눈을 꼭 감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아마도 여성들이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달콤하고 열렬한 키스를 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아르누보 계열의 장식적인 양식과 황금빛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여 관능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탄생시킨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처녀 (The Maiden), oil on canvas, 190x200cm , 1912 - 1913
클림트는 가난에 시달리며 우울한 어린 시절은 보냈다. 크리스마스에도 집안에 먹을 빵조차 없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이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그림에 소질을 보였던 그는 1876년 14세 때 장학금으로 미술 학교에서 회화와 장식 미술을 공부한다.
미술학교를 졸업한 1883년 이후에는 국립 극장, 미술사 박물관, 대학의 건물에 벽화와 천정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 후로 보수적인 미술단체의 일원으로 고전적 사실화에 매달려서 작품활동을 하던 그는 판에 박힌듯한 시대에 뒤떨어진 그림을 그리는 것에 흥미를 잃는다.
그는 금박. 은박, 등을 직접 그림에 붙이고 색을 칠하며, 기하학적인 문양을 배경에 넣어 황금색으로 꾸미는 화려한 화풍을 창조하게 된다.
이른바 그의 황금시대(golden period)가 문을 연 것이다.
1907-1909년은 황금시대의 절정기로서 키스, 유디트 II,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I, 희망 II 같은 대표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빈 미술가 협회에서는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나치게 치장한 클림트의 작품을 보며 신랄하게 비난했지만, 진보적인 예술가들이나 일반 대중들은 열광했다.
그가 이런 황금빛의 화려한 작품을 제작하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보헤미아에서 이민 온 그의 아버지는 직업이 금세공사여서 귀금속을 다루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정기적으로 자주 이탈리아 여행을 즐겼는데, 비잔틴 양식의 산 비탈레 성당 내부의 화려한 모자이크와 장식적인 패턴을 보면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Gustav Klimt, 유디트I, oil on canvas, 178x46cm , 1901
구스타프 클림트는 컴머성 정원의 산책로, 개양귀비 들판, 가르데 호수 주변의 말세진느, 배나무, 해바라기가 있는 정원, 북부 오스트리아주 농가 등, 아름다운 풍경화 작품들도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의 그림 핵심주제는 줄곧 여성이었다. 평생을 상류층과 사교계 여성들, 그리고 청순한 시골 소녀의 초상화를 즐겨 그렸다. 화사하고, 화면장식이 풍성한 초상화는 상류층 여성은 물론 사교계에 진출한 여성들도 그의 초상화를 가지는 것이 꿈이었다 한다. 그 덕분에 클림트는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클림트는 어머니와 누이를 돌보며 살았지만, 모델들을 비롯하여 귀족 여성 후원자들, 그 외에도 많은 여인들과 숱한 염문을 퍼뜨리며 복잡한 사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29세 때 한눈에 반한 12세 연하인 에밀리 플뢰게와는 1918년 초 뇌출혈과 합병증으로 56세에 세상을 떠나기 잔까지 27년이란 긴 세월을 정신적인 숭고한 사람을 나눌 정도로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화가이기도 하다.
클림트가 남긴 작품 수는 페인팅이 약 250여 점, 드로잉은 무려 3천여 점이나 된다. 드로잉은 방대한 양뿐만 아니라 역사상 손꼽히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드로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이다.
찬란한 황금빛, 화려한 색채의 클림트의 작품들은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미술관은 세계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Gustav Klimt, 성취(Fulfilment), 수채화, 템페라와 수채, 194.5x120.3cm, 1905 -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