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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Dec 13. 2023

장욱진

까치, 까치, 까치





장욱진, 풍경, oil on canvas, 1980, 개인 소장, 사진제공. 장욱진 미술 문화 재단





유년시절 내가 자란 시골집 주위엔 까치가 자주 눈에 띄었다집 앞마당 가에는 수령이 오래된 오동나무가 하늘을 찌르며 서 있었는데까마득히 높은 곳에 까치집이 있어 까치들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가 있었다까치는 가볍게 날아서 오동나무와 마주 보고 있는 고욤나무 가지로 이동하여 머무르기도 했고우리 집 안채나 바깥채 지붕에 내려앉아 집안을 염탐하는 듯 떠나지 않고 기웃거리기도 했다

 

까치는 우리나라 텃새로 날렵한 몸매에 흰색의 배와 어깨를 가지고 있고검은색의 머리와 등그리고 긴 꼬리를 가지고 있다설화나 동요에 등장할 만큼 사람들에게 친숙한 새이다

유년시절나는 까치를 유난히 좋아했다

까치의 울음소리에 잠을 깨는 날은 행복감에 마음이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침에 까치가 울지 않는 날은 잠에서 깨어나도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소라처럼 귀를 크게 열고 기다리곤 했다끝내 까치가 울지 않는 날은 무언가 소중한 물건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기까지 했다.

까치 울음을 학수고대하는 이유는 그 소리를 듣는 날은 영락없이 반가운 손님이 우리 집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매일매일 반복되는 변화 없는 무료한 일상에서 손님이 온다는 것은 그 틀을 깨는 흥미로운 일이었다어머니는 솜씨를 발휘하여 별식을 만들어 큰 상 가득히 차려 놓으시고 손님과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대화하고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마치 집안이 잔칫집 분위기 같았다

가까운 친척들은 며칠 동안 묵을 때가 있었는데 학교에 가도 마음은 온통 집에 있었다.






장욱진, 까치, oil on canvas, 48 x 46cm, 1958, 국립 현대 미술관 소장





내가 장욱진의 그림에 반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8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던 중 까치 그림을 발견하면서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잊고 살았던 유년시절 까치에 대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소환되어 행복감에 쌓이게 했다. 


그가 그려낸 까치는 사람과 공생하는 다정다감한 모습이다.

나무 꼭대기에서 길을 지나가는 여인을 빤히 내려다보며 말이라도 걸듯하고,

정자에 앉아 쉬고 있는 노인네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나무 그늘 아래 낮잠을 달게 자는 남정네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나뭇가지에서 서성이기도 하고,

아이와 산책 나온 엄마를 위해 깍 깍 노래도 불러주고,              

오두막집 외로운 노인과 아이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장욱진

그는 일생동안 유화먹그림판화책표지와 삽화도자기 그림 등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나무까치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인물을 그렸다

그의 작품에서는 으레 자연과 인간, 그리고 동물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정감 있는 형체와 색채로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토속적인 작품을 탄생시키며 한국 미술사에 새로운 한 획을 긋기도 했다

아동화를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에서는 추상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장욱진, 나무와 까치, oil on canvas, 37.5 x 45 cm, 양주 시립 장욱진 미술관 소장




그는 충청남도 연기군의 한 시골 마을에서 1917년에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며 시간만 나면 종이 위에 연필로 자연의 이미지와 인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리곤 했다학창 시절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작품 공모에서 여러 차례 입선하기도 했다

 

그는 성장하여 서울과 동경에서 미술 공부를 할 때도 고향과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화폭에 담았다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왕성한 작품을 하게 되자 어린 시절의 정서를 잃지 않기 위하여 경기도 덕소신갈충청북도 수안보에 터전을 마련하고 전원생활을 이어 가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고령에도 항상 일곱 살 나이로 살려고 했던 장욱진그는 누구보다도 까치와 지독한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

18세에 처음으로 까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평생에 걸쳐 계속되었으니 말이다.

그가 일생동안 그린 유화작품이 730여 점인데, 그중 400점 이상이 까치가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신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까치의 볼 때면나는 어느새 유년으로 돌아가 있다





장욱진, 소와 까치, oil on canvas, 40.5 x 30.5Cm,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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